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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28. 2020

『안나 카레니나』 읽기에 앞서

적어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톨스토이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고 그중에서도 '안나 카레니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이 책을 읽어본 사람에 관해서 물으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책이 두껍기도 하거니와 19세기 러시아 시대라는 특수성 그리고 꽤 많은 수의 등장인물들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기도 해서 그럴 거라 짐작합니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 책만큼은 죽기 전에 읽어봐야 할 책 중 당당히 앞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가볍게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심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일 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그의 가치관이 상당 부분 직접적으로 반영이 되어 있기에 이질감이나 반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사람의 심리 묘사나 입체적인 인물의 구성 등은 탁월하다 못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입체적 인물 구성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이 책에는 무조건 선한 인간도 악한 인간도 나오지 않습니다. 때로는 악하게 보일 수 있는 인간이 본성은 선한 점도 있고 악해 보이는 인간임에도 선하게 느껴지고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들지요. 그만큼 인물 하나하나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그 시대의 시대적 분위기나 정치,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당시 시대와 계급 사회에 대한 그의 인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의 생각에 반대되는 부분들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른 등장인물의 입으로 제시되고 있어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꽤 재밌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 덜컥 구매했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등장인물도 많고 책도 두껍고 어려워 결국 완독을 못했다고 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립니다. 사람에 따라 책을 읽는 방법은 각양각색일 것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에 집중하며 읽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인물 관계도까지 그려가며 책을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방법은 많은 등장인물이나 배경 묘사에 지레 겁을 먹기보다 되도록 최대한 힘을 빼고 편하게 읽는 것입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최대한 힘을 빼, 자기 자신을 버리고 그 책 안으로 들어가 복합적인 인물 중 한 명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격이 카레니나와 같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안나 카레니나의 입장에서 보기도 하고 레빈의 정직하고도 선한 성격이 좋다면 자기 자신을 그런 사람에 대입해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책 속의 세계는 당신의 것이 되며 책 속의 인물은 당신 자신이 되게 됩니다.

인물의 묘사와 더불어 그 배경을 함께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인물의 감정은 그 배경에 녹아들 수밖에 없습니다. 터키의 노벨 수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은 그의 책 "소설과 소설가"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예로 들어 소설을 쓰는 법에 관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책에서는 그녀의 연인이 되는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고 나서 기차를 타고 오는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녀의 감정의 변화가 그 배경과 색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공부하듯이 보는 것보다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과 책 안의 존재들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치 특정 요일마다 방영하는 TV의 드라마들처럼 말이죠.     


왜 읽어야 하는가?     


철학자 스피노자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선한 인간조차도 어떤 관계에 있냐에 따라 악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욕망이라는 녀석은 데카르트처럼 이성에 의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죠.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다양한 인간의 욕망이 나옵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 등등 다양한 욕망을 가진 인간들이 어떤 관계를 갖게 되냐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때로는 그 욕망의 끝은 비극적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욕망의 순수함을 욕하거나 나무라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성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결국, 인간의 이성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 관계 속의 욕망은 톨스토이는 레빈의 생각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끌어냅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몇몇 분들이 이 게시판에서도 종종 남기는 그것이죠.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위대한 개츠비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순수한 욕망과 어떠한 비극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개츠비에서 없는 것이 이 책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또한, 이 책에 없는 것이 개츠비에게도 존재하긴 하지만요.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읽는 것도 재밌는 책 읽기가 아닐까 싶네요.

 이 책을 감히 그 단편만 때어 놓고 본다면, 특히 안나 카레니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19세기 러시아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이름 짓고 싶은 욕망이 마구 솟구칩니다만 그러면 위대한 톨스토이 님에게 꿈에서 꾸지람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타인을 이해하는 법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감히 추천합니다. 마치 위대한 개츠비의 서두에서 나오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문학 동네, 김영하 번역판)라는 말처럼 이 책은 타인의 관계와 내면을 알고 이해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쉼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위대한 개츠비의 위와 같은 말이 멋지게 서두를 장식하고 있듯이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서두에 이와 같은 멋진 말이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제각기 다른 불행의 씨앗이 바로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어떠한 관계가 발생하고 그 관계가 나중에 어떤 불행과 행복을 만들어 가는지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더 훌륭한 연애 개론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13. 07.




2013년도에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방학 중 추천도서로 톨스토이의『안나 카레니나』를 소개하면서 쓴 글의 일부이다. 글을 보면 알겠지만, 책의 내용보다도 '이처럼 두꺼운 책을 어떻게 읽는 것이 좋을까?'를 초점으로 하여 안내를 했었다. 19세기 후반에 쓰인 이 책은 시대 배경이나 인물을 조금 각색한다면 현대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여러 전형들을 볼 수 있는데, 배경을 통한 인물의 심리 묘사나 단순히 선악이라 말하기 어려운 입체적인 여러 등장인물의 특징, 당대의 논의되던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인물의 대화나 서사 속에서 녹이려 했던 점 또한 그렇다. 물론 저자 자신이나 같은 시대를 살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여러 소설에서처럼 끝내는 종교적 색채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한 명의 독백이 지나치게 그 소설의 방향이나 교훈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측면에서는 한계점도 있어 보이나 시대를 고려하여 본다면, 그런 점이 결코 이 소설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의 가치 측면에서 일반적인 이야기 하나를 생각해 보자. 스티븐 핑커 교수는 그의 두꺼운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독서는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의 기술'이라고 한 바 있다. 그중에서 18세기의 소설은  영국과 프랑스에서만 100권 이상의 소설이 출간됨에 따라 이전의 영웅, 귀족, 성인의 공적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의 갈망과 상실을 생생하게 그렸다고 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이 책도 역시 종교적 잣대에서 일차원적으로 가르던 인물들의 행위들을 다시 조망하게 되고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던 까닭을 이해하거나 적어도 공감하기 시작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점차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지 않고 그 일탈의 심리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배경으로 눈을 돌리게 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글이 종교적 가치를 위배하는 데 영향을 미치길 원치 않았을지도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소설은 수많은 독자와 후대의 저자들이 종교적 세계관에서 나아가 새로운 가치관에 발을 디디게 하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마치 갈릴레오나 뉴턴이 종교적 세계관과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의 절충을 택하려 했어도 결국 그 패러다임은 인류의 가치관을 바꿔버린 것처럼. 우리는 흔히 이러한 책을 일컬어 '고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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