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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25. 2020

『죄와 벌』의 첫 장을 펼치며.

"이봐요 학생." 그는 자못 위엄 있게 말을 꺼냈다. "대개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건 진리요. 나도 술에 취해 지낸다는 것이 미덕이 아님을 잘 알고 있어요. 아니, 그 편이 더 진리일 거요. 하지만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학생, 그야말로 빈털터리의 거지 신세가 되는 것, 이건 죄요. 그게 단지 어느 정도의 가난이라면 태어날 때부터의 고결한 감정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지만 정말 가난하게 되면 절대로 유지할 수가 없으니까요. 글자 그대로 적빈이 되면 그때는 이미 인간 사회에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비로 쓸어냄을 당한단 말이오. 모멸감이 더욱더 뼈에 사무치도록 말이야. 그건 당연한 일이오. 사람이 가난의 밑바닥을 헤매게 되면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모욕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술을 마시게 되는 법이오! 이봐요, 학생, 실제로 한 달쯤 전에 내 여편네까지 레베쟈트니코프란 사나이에게 얻어맞았소. 내 여편네는 나 같은 것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여자인데……. 알겠소?"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박형규 번역, 누멘출판사 25p 中〉


가난은 죄일까? 문득 어린 시절 배웠던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가 떠오른다.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이 죄가 되는 현실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가난하기 때문에 진짜 감정은 깊은 곳에 숨겨두고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 것도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조차 버려야 하는 것을 보면 실로 그렇다.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태어나기 전부터 교회를 다녔기에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그날에 맞게 예수의 탄생에 관한 연극을 했었는데 한 번은 예수를 맡아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얼굴은 스스로 거울을 보아도 흉악범처럼 생겼는데, 인자한 예수를 맡았으니 참으로 우스울 노릇이었다. 대사를 외우는 것보다도 위엄을 갖춰보려고 거울 앞에서 이런저런 표정을 하며 대사를 읊었다. 그때 했던 대사 중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따라 읽고 외워가면서 가슴에 뭔가 와 닿는 생각이 있었다. 그 의미는 마음의 곳간이 모조리 비어서(empty)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즉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난을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복이나 천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난이라는 말과 맞물려 와 닿았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 혹은 그 속에 나오는 성공한 이들은 가난은 죄도 아니고 콤플렉스로 여길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저 죄와 벌의 한 대사처럼, 어느 누군가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과연 정말 그럴까?”라고 묻는다면 진심으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루 사이에도 마음은 수십 번 바뀌는데,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살아 보자!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조그만 돌부리 하나에라도 걸리기라도 하면 다시금 가난과 같은 삶의 수많은 굴레가 죄스럽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장성한 부모는 어린 자식에게, 장성한 자식은 여전히 가난한 부모에게 끊임없이 굴레처럼 이어진다. 

세상에는 수많은 죄가 있다. 비단 살인, 방화 등의 끔찍한 범죄가 아니더라도 가난, 취업하지 못한 것, 결혼하지 못한 것도 누군가에게는 죄가 된다. 그런 죄들은 누가 만들고 누가 집행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신조차도 복이 있다고 한 것들을 죄와 같이 바라보고 또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왜 그런 일로 가슴이 마음에 멍이 들고 슬퍼해야 할까?

20대 중반 즈음에 어떤 회식 자리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한 조교 선생님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나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부모의 고충과 노력을 떠올리며, 

“저는 어린 시절부터 철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아이도 저처럼 어릴 때부터 철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요.”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그녀는 이런 나를 슬픈 듯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내 자녀들이 내가 늙을 때까지 철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철이 든다는 것은 부모의 고생을 짊어지는 거잖아. 그런 고생을 아이마저도 알게 하고 싶지 않거든.”

그 말에 마음 한쪽이 잠시 짠해지며, 이따금 슬픈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던 어머니의 얼굴과 전화 너머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미안하다고 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 내 어머니, 아버지도 나를 보며 그런 미안한 마음을 가졌겠구나….”

항상 행복한 가정이고 누구보다 서로서로 생각한다고 했던 그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서도 가난은 누군가를 항상 미안한 감정을 마음에 담은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난으로부터 시작되는 “죄와 벌”은 시작부터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가난한 사람, 비참한 인생…….

가난하면 비참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남의 집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의 대화에서 가난이 드러나지 않았다. 또한, 월든의 숲에서 살고 있던 소로우는 최소한의 돈으로 살면서도 만족과 행복을 얻었다. 이러한 위인들의 삶을 볼 때면 돈이 결코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위안이 든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이상과 우리의 현실이 괴리감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한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너무도 좋아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나와 같은 현실에 살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역시 우리처럼 때에 따라 늦게까지 일하고 돈을 벌며, 여자를 좋아하고 밤이면 친구와 함께 왁자지껄 떠들면서 술을 마신다. 그러나 그럼에도 어떠한 것도 그의 자유를 뺏을 수 없다. 가난도 지독한 현실조차도 그의 자유와 흥을 깨뜨릴 수 없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괴로운 일도 쉽게 털어버리고 지독한 허울이나 사회의 굴레조차 “개나 줘버리라지!” 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죄와 벌을 다 읽고 나면 다시 지중해 조르바가 있는 책 속으로 한동안 떠나야겠다. 답답함도 현실의 굴레도 훨훨 벗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부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전까지는 내 가난과 이 책의 가난을 보며 답답해질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며 자신의 모든 슬픔을 털어내 버리듯 이 책으로 답답하고 답답해진 그 마음을 모조리 털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선 바닥까지 모두 긁어낸 답답함을 새로운 마음으로 채울 것이다. 마치 조르바처럼.


/ 2013년에 쓴 글을 일부 수정.



『죄와 벌』에 관한 독서 모임 모집을 위하여 인터넷 게시판에 쓴 글을 문어체로 수정하여 올린다. 책의 막 첫 장을 펼쳤을 때, 보았던 9등 문관 마르멜라도프가 라스꼴라니코프에게 했던 이 구절이 눈에 익어, 책의 중간도 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썼었다.     

가난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 어머니의 포장마차가 떠오른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어둠 속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의 포장마차의 뒤를 밀었다. 그것이 최초는 아닐지 모르나 어린 시절, 내가 가난이라고 느낀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내 의식 속에는 어머니는 그렇게 가난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내 어머니가 거친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지면 그 시절의 가난이 느껴진다.     

그 시절, 어머니는 실로 가난이었고 아버지는 실로 그리움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버지와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 날마다 집 뒷동산에 올라가 아버지를 기다렸던 그 시절에, 그 어느 날 갑자기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던 그 등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짖으며 뒤를 껴안았던 그 시절에, 아버지는 그리움이었다. 그래서 그가 더 내게 무언가를 해주지 못해서 내게 미안하다며 수화기 너머로 넌지시 건네던 그 한마디에 나는 그 시절의 그리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아니라며, 되려 고맙다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등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 나는 아버지가 진정 내 아버지라서 고맙다며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도, 좀 더 나이를 먹은 시절에도 나는 가난했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비참하진 않았다. 다만, 나이를 점점 더 먹어가면서는 미안함,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부모를 보며 그 사랑에 아직도 보답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점점 더 서글퍼질 뿐이다. 그 시절의 가난을 떠올리면서도 그 가난을 아직도 지우지 못한 데에 따른 미안함, 그리움을 떠올리면서도 또다시 그리워하는 날이 그때처럼 갑자기 오게 될까 하는 두려움……. 

이 모든 게 내가 다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은 죄책감이 된다. 그들과 떨어져 살면서 점차 무뎌지다가도 가난의 목소리를 듣거나 그리움을 떠올리게 될 때면, 또다시 죄책감은 슬픔이 되어 찾아온다. 이는 사랑이라는 슬픔이다. 사랑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슬픔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로지 그점이 지금까지도 이따금 날, 비참하게 한다. 비참하게도 나는 아무 해결책도 찾지 못하고 다만, 전화기 너머로 그저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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