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리석은 글쟁이를 위한 변명 20.

by Chris

밤에 쓰는 글은 언제나 감정을 고조시킨다. 아니 그게 아니고, '언제나'라기보다 대체로 그렇다. 아니 그게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기보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것 같다. 글쟁이는 새벽이라는 서글픈 시간에 술에 기대어, 그리고 서글픈 음악에 기대어 글을 쓴다. 자신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며, 과거 어느 날 문득 동아리방에서 지금 듣고 있는 노래를 기타를 치며 따라 부르던 때를 회상한다. 그는 그때, 분명 자신의 미래에 분명 그렇게 될 거라며 생각했다. 결국에는 자기 예언적 실현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토록 발버둥을 쳐봐도 마치 결론이 정해진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시간과 장면을 건너뛴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아침이면 잊어버릴 어리석은 생각을 또 하고 만다. 그는 부정적이며 암울한 생각은 자신의 믿음에 의해 이루어지고 긍정적이고 활기찬 미래에 대한 소망은 곁에 두고 나를 사랑해주는 이의 믿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렇게 될 거라는 우울한 생각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할 줄 아는 것은 자기 마음의 가장 한 구석에 몰아넣고 봉인할 뿐이다. 그것이 언젠가는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만큼 끝내 버리질 못한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잠시 사랑이 최고인 까닭을 생각했다. 그것은 소망을 실현할 것이라며 나직이 외치는 자신의 믿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믿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피가 섞인 존재가 아님에도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떨고 있는 가엾은 존재를 믿어주던 일이 실로 대단한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 그가 서글픈 까닭은 지금 그러한 존재가 그의 곁에 없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예감 때문이 아니다. 그저 밤의 서글픈 감정이 밀려와서일 뿐이다. 갑자기 추워진 바깥 날씨가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기 때문일 뿐이다.

이러한 밤에 이르게 되면, 나는 도리어 어리석은 결말을 찾는다. 그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사람 따위는 되지 말자. 쓸데없는 관심 따위는 두지 말자. 결국, 흐릿해지고 떠나갈 관계에 미련 두지 말자. 차가워지자. 더 차가워지자. ‘혹시……’하는 마음을 갖지 말자. 마음을 열어 상처 받지 말자. 마치 사춘기 소년의 치기 어린 생각처럼, 그렇게 관계를 진전하지도 말고 그냥 될 대로 놔둬 버리자고 다짐한다. 아! 머지않아 세상에 혹하지 않을 나이가 될 터인데도, 글쟁이의 마음은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다.

취기가 올라오자 글쟁이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내려놓고 의자를 기울여 하얀 천장과 등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자, 붉은 잔상이 눈가에 어른거렸다. '핑' 도는 기분이 들다가 웃고 울고는 반복한다. 왜 슬픈지, 왜 기쁜지 알 도리가 없다. 신체 반응이 일어나고 이어서 다른 추억들이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는 감정은 점차 더 고조된다. 이게 밤의 역할인지, 술의 작용인지 알 도리가 없다. 음악은 잠시 끊겨 적막 상태이다. 음악이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이 모든 것을 음악의 탓으로 돌렸을지도 모른다. 음악은 그 너머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니까.

그는 그런 꼴 같지 않은 행동을 하다 말고 휴대폰을 켠다. 잠이 오지 않는 저녁에 하는 일이라곤 결국 휴대폰을 켜서 우스운 영상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책이라도 읽으면 좋으련만, 그는 중독적으로 이 시간을 휴대폰이 추천하는 무작위적인 영상을 눌러댄다. 멍하게, 줄기차게 봐야 한다. 때로는 언제 우울했냐는 듯 낄낄대면서,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봐야 한다.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른다. 천장의 등은 꺼졌음에도 휴대폰은 꺼지지 않는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정말 어리석은 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오로지 밤의 영향력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절제되지 않는 그 힘을 만끽하는 중이다. 어둠의 신이 준 이 거룩한 밤의 우울이 그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거룩한 밤에 태어난 예수는 정말 신이었을까? 신이었다면, 그는 탄생의 순간부터 그의 생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고난을 치르게 되며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어둠 속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말이다. 결국, 그는 죽기 위해 태어난 셈이다. 그의 탄생일을 온갖 거룩한 밤으로 포장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죽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앞날이 정해져 있는 자기 예언적 실현 속에서 살아갔던 그는 자신의 고난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 뒤에 있을 부활을 기대하며, 그것이 자신이 위대해지기 위한 것임을 직감하면서 살아갔을까?

그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두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휘젓고는 다시 예쁜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얼굴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환각제 같은 이들이 그 안에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는 바로 그 안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휴대폰의 노예가 되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벗어나지 않았다. 중독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겨내기는 힘든 법이다. 이 밤에 시체처럼 누워 꺼지지 않는 휴대폰을 보는 것이 바로 그의 신경을 관통하는 중독이었다. '이 짓거리를 그만해야지'라고 하면서 잠을 청하려 해도 결코 잠들 수 없는 이 밤은 결국 어둠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짓거리를 계속하게 했다. '꺼지지 않는 등불이시여!'가 아니라 '꺼지지 않는 휴대폰이시여!'가 되었다. 그 안에서 그는 끊임없이 낄낄댄다. 내일의 허무를 모조리 없애겠다는 듯이, 동이 틀 때까지 휴대폰의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기를 쓴다. 아니 젠장, 도대체 그는, 이 나이 먹도록 무슨 짓거리를 하는가?

그는 부활한 자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 그대는 성숙한 자인가? 그는 전보다도 자신이 멍청해졌다고 고백한다.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은 점점 산처럼 커져만 간다. 나약한 지성은 세월의 망각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진다. 가물거리는 생각의 조각들을 보며, 이게 내가 한 말인지, 오래전 어느 책에서 본 말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 생각은 내 생각일까? 어느 저자의 생각일까?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결국 적당히 웃어버리고 마치 모두 다 제 생각인 양 상대에게 말하고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한다.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을 더 기억해 내려 노력하지 않는다. 심각한 게으름이다. 그는 멍청해지고 부끄러움이 많아지고 심지어 게을러졌다. 아마 게을러졌기에 멍청해지고 멍청해지니 부끄러움이 많아졌을 것이다.

그는 아마,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은 망각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고 생각한다. 몇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수없이 노력했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흐릿해지고 사라져 버리는 것을 깨달으며, 무상함을 느끼며 할 수 있는 거라곤 한숨 한 번과 동시에 지금도 어제처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속으로 되뇐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붉은 여왕에 이끌려 달려갈 수밖에 없는 엘리스 신세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는 자신의 망각과 끊임없이 경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망각이 이길 것을 두려워하며.

이 어리석은 놈아. 결국 너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소유욕에 불타올랐던 거야. 말로는 거창하게 존재적인 삶을 살며,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의 생각이 담긴 가치 있는 책을 보면서 통찰을 얻기를 기대했겠지만, 결국 네가 한 짓이라곤 결국 잊게 될, 한낱 덧없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모아대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바보 같은 놈! 결국, 넌 그것들을 오랫동안 모으면 다 너의 피와 살이 되리라 기대했겠지. 물론 네가 읽고 경험한 모든 것들은 너의 의식 속에서 모자이크처럼 서로 다른 색과 모양이 결합해 형체를 만들어내긴 했을 거야. 그래서 그게 뭐? 너는 글을 쓰려고 한 것 아니냐?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걸 흐릿한 네 의식 속에서 묻어 두기만 한다면, 결국 지금처럼 그것은 바래고 지워져 결국 흰 도화지처럼 될 뿐이야. 이 창의력 없는 놈아! 너는 그냥 해야 했어. 우물쭈물하지 말고 그냥 해버렸어야 했어. 근데 도대체 뭘 한단 말이냐? 도대체 뭘 어떻게?

어둠은 그동안 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떠오르게 했다. 흰 도화지는 새로운 것을 그려내지만, 눈 앞의 검은 도화지는 그 블랙홀 같은 색에 가려진 그림들을 긁어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으로 긁어버린 흔적이 그를 슬프게 했다. 그 긁힌 틈 사이로 어둠에 조용히 묻어 두었던 오래된 것들이 비집고 나와 눈 앞에 펼쳐진다. 그 모습이 긁힌 상처처럼 아리다. 글쟁이는 다시 휴대폰을 켠다. 낄낄대며 웃는다. 상처를 덮을 어둠을 만든다.

날이 밝아도 그의 어리석은 삶은 지속될 것이다. 때로는 웃을 것이며, 때로는 울 것이다. 아마도 웃을 날보다 울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웃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그도 그러할 것이다.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삶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실로 즐겁다고 떠들고 다닐 것이다. 그러나 내일도 찾아올 이 밤이 저 달빛을 서글프게도 좁은 방 안으로 가져올 날이면, 나는 그 순간만큼은 '삶이 서글프고 눈물이 난다'라고 입 밖에라도 꺼내기 싫었던 그 진실을 말할 것이다. 이 밤에만 존재하는 진실이며 어둠의 장막 안에 처박아두고 가까운 이에게조차 보이고 싶지 않은 진실이다. 그의 모든 것을, 아무 사소한 것마저도 이해해줄 이에게만 살짝 보여주고 위로받고 싶은 진실일 따름이다.

이 모든 게 술 때문이다. 아니다. 서글픈 노래 때문이다. 아니다. 이 밤 때문이다. 하하하! 웃어버리자. 예쁜 그대를 보고 웃어버리자. 그리고 잊어버리자. 다짐, 또 다짐……. '내일은 일찍 일어나겠어.' 또다시 무너질 어리석은 내일의 계획을 다시 세우고는 그는 변할 거라고 또 다짐한다. 어리석은 글쟁이는 이처럼 어리석다. 그렇게 어리석어서 다행이다. 오로지 어느 새벽에 이르러서야 이 감정을 기억할 테니. 힘내자, 토닥토닥 토닥토닥……, 토닥토닥, 토닥토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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