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사회 참여/ 여행에 대한 동경과 일상의 예술화
나의 일상 여행기. (31)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폭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과학 기술에 대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지식이 올바로 사회에서
행해지도록 그 문제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났다. 상윤이는 스터디 때문에 아침부터 부평으로 간다고 해서, 나도 그냥 하루 늦잠을 잘까 하다가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 어떻게 하면 모임 약속이 있을 때 한두 시간 일찍 나가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아침의 게으름에도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저녁에 일찍 취침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게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침부터 피할 수 없이 책임을 지는 일을 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특히 호감이 가는 이성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만큼 행복해지는 일은 없다. 일찍 일어나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랑을 기반으로 한 존경의 시선이 남자를 충만하게 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안기며 "충전"하는 중이라며 헛소리를 해대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스터디룸에는 중간고사로 새벽까지 밤을 새운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오랜만에 학교 안의 'IT 카페'로 갔다. 마찬가지로 밤새운 사람들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아직 남은 자리가 있었다. 자리에 앉아 '부분과 전체'를 펼쳤다. 일기를 쓸까 했지만 10시 영어 모임 때문에 호흡이 끊길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보통 5시간 정도 걸리는 듯하다. 중간에 끊기면 나중에 써도 되기는 하나, 될 수 있으면 한 자리에서 어느 정도까지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쓰기에는 아침의 글쓰기는 초반에는 두뇌 회전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졸음을 깨우고 말랑말랑해질 시간이 필요했고 후반에는 영어 모임을 위한 별도의 준비로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두 시간 정도의 독서는 한 챕터 정도는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은 연구자의 책임에 관한 챕터로 '폭력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는 과학 기술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지식의 상아탑에서 연구만 해야 할 것인지 자신의 지식이 올바로 사회에서 행해지기 위해 그 문제에 대하여 참여해야 하는지'를 두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핵과 같이 폭력의 위험이 있는 도구를 권력자에게만 맡겨 두었을 때 발생할 끔찍한 결과를 미리 방지하려면, 학문적 성취만으로 둘 것이 아니라 책임 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않게 하려면 그와 동등한 권위나 힘을 사전에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지식인의 사회참여’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권력을 소유했지만, 마찬가지로 지식을 폭력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의 물리학자들처럼 원자폭탄의 위험성을 알고 있음에도 폭탄을 만드는 데 일조하거나 혹은 영화에서 나올 법한 광기어린 과학자와 그를 동조하는 집단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왜 하이젠베르크는 자신과 같은 이들이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물리학자들은 순수하며 자신이 지식이 폭력에 사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발견한 위대한 업적이 피로 얼룩지길 누가 바라겠는가? 그것은 자신에게도 오명이 될 것이다. 또한, 사회 참여를 위해 만든 일련의 과학자 집단은 미치광이보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사회 참여를 강조한 것이 아닐까?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의무인가? 의무는 아니지만 커다란 미덕이며 바른 사회를 위해서는 지식인의 참여로 올바른 토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선동은 한 문장과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치적 언어를 알지 못하는 과학자들로서는 정치적 토론이 상당히 지치는 일일 것이다. 이는 학문의 연구를 통해 무언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설득을 통해 지지자를 만들어가는 부단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곡학아세 하는 지식인과 싸워야 하며, 이미 선동당한 이들로부터 비난과 수모를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뜻있는 지식인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파시즘적 광기를 상대하다가 지쳐서 결국 자신의 연구 공간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다. 이들은 도대체 무식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으며 자신은 연구만 할테니, 그 활용에 대해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회의 암세포는 점점 그 세력을 화장해 나갈 것이다. 지식인의 칼인 지식과 합리적인 토론 자세는 이들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몇 안되는 소중한 도구이다.
상대방에게 얼마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느냐.
영어 모임은 진규씨만이 참여했다. 영어 회화의 모범을 보이고 싶었지만, 이따금 더듬거리는 내 영어 실력을 생각하니 과연 계속 이 모임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영어 학습을 위해서라면 아르바이트를 가는 1시간 거리의 길 위에서 복습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차라리 이 시간에 충분히 글을 쓰거나 영어 학습을 위한 다른 공부를 하는 게 외려 나한테 이득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임을 준비하면서 받는 참가비가 내 생활에 대단히 많은 기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어찌할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오후가 되고 가격파괴 분식점에 가서 비빔밥을 먹었다. 족히 2인분이 넘어 보이는 양을 주려는 걸 간신히 말리고 밥을 먹었다. 먹으면서 이 집에서 일하다가 근처에 국숫집을 차린 이모가 생각나서 잠시 이야기를 했다. 이곳을 오기 전에 약국을 들리면서 지나가다 잠시 그곳을 힐끔 봤는데, 사람이 많아야 할 점심때에 손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왜 안되는지 잠시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격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넌지시 꺼냈다. 지난번에 상구와 그곳을 지나가면서 이야기하다가, 국수 값이 6,000원 이상이라 그 대신 밥을 먹으러 간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맛있으면 학생들도 가격에 상관없이 사먹긴 하지만, 국수 가격치고는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식당의 밥값이 그 가격대이거나 또는 국수의 대체재들이 그보다 못한 가격을 받는 상황이어서 선뜻 그리로 발길이 가진 않을 것 같았다. 또한, 입지 또한 식당이 몰려 있는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떨어진 골목에 있어서 밥집 골목처럼 지나가다가 눈에 띄어 들어갈 수도 없었고, 처음부터 먹을 의도가 있어야만 갈 수 있었다. 더구나 그 골목은 식당들이 얼마 못 가 장사를 접는 곳이기도 했다. 밥집 컨셉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면 저녁 손님을 위해 술안주로서 역할을 할만한 게 있다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국숫집에서는 애매했다. 그렇다고 따로 홍보를 하거나 입소문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전에는 학교 게시판의 '베스트 워스트'란에 추천 글이 올라와 사람들이 보고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글은 뒷 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물론 많은 생계형 요식업과 자영업이 그러하듯 이모도 그 정도 매출로 만족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아는 사이로서, 그 이모가 잘됐으면 싶었다. 다만, 이런 걸 이야기하기에는 우리 관계는 그저 안면 정도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이었다. 만약 그런 고민을 가격 파괴 분식점의 이모가 했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도와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친함의 정도는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달린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언제쯤 그런 곳에
가볼 수 있을까?
점심을 먹고 커피숍으로 갔다. 시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사람들로 분주했다. 간신히 자리를 찾아 앉아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하고 일기를 썼다. 어느 정도 썼을 무렵 보이스톡이 왔다. 유럽으로 여행을 간 성영이와 수지였다. 어디냐고 물어보니 오스트리아 빈이라고 했다. 문득 머릿속에 세기말 빈의 모습과 비트겐슈타인과 베토벤이 연이어 떠올랐다. 음악가와 철학자들에게 그곳은 성지와 같은 곳이 아닐까 싶었다.
전화를 받을 무렵, 커피숍에 있어서인지 빈의 한 커피 살롱에서 수많은 지식인과 음악가가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토론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거리에까지 구수한 커피 냄새가 나며 단층의 우아한 커피숍의 건물은 그 자체로도 매혹적이며 인문학적 감성을 일깨울 것이었다. 마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이곳은 실제로는 프랑스 아를의 한 카페임)’와도 같은 곳이 거리에 즐비하게 있고 저녁이 되면 쏟아지는 별 아래로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겠지. 물론 실제는 상상보다 차가우며 삭막할 수 있겠지만, 내 상상은 이미 빈의 매혹적이며 이국적인 풍경을 눈 앞에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언제쯤 그런 곳에 가볼 수 있을까?
일전에 상윤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외국에 가본 적이 있는지 서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에 간신히 필리핀과 중국, 그리고 몽골을 가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비를 들인 일반적인 여행은 아니었고 학교 차원에서 진행된 봉사활동 프로그램이거나 문화체험, 또는 일의 일환이었다. 그 덕분에 자부담 비용이 극히 적었다.
아쉬운 것은 다른 애들처럼 그 시절 유럽이나 서구 국가들을 가보지 못한 것이다. 마음이 있었더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갔었을 텐데, 도무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번 것 외에 여행을 위하여 돈을 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바쁘게 살았지만, 지금처럼 돈 안 되는 일만 했던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다고 그 나이 먹고서 여행간다고 집에 손을 벌리기는 정말 싫었다.
사람은 하지 못한 것,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동경한다고 어쩌면 나 역시 그런 것을 동경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건, 그러한 동경은 실현 가능한 구체적 목표 위에 세워진 동경이 아닌라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그 까닭은 여행에 대한 강한 갈망과 의지가 없어서이다.
만약 작가적 관점에서 혹은 작가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 있을 때 그곳을 경험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 같은 글과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까? 혹은 서양 미술사의 곰브리치가 그의 책에서 말한 수많은 예술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다못해 5년 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경주 여행을 갔다 온 것이 지금도 잊지 못할 기억이고 예술을 보는 관점을 조금 더 트이게 했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이국적 풍경 위에서는 또한 어떤 충격과 감상을 얻게 될까? 구글링을 통한 감상과 이미지를 온 감각으로 접할 때, 그것들은 나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줄까?
일상의 모든 것을
예술품을 보듯 본다면 어떨까?
젊은 시절의 경험을 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직 경험해 볼 것들이 무한히 많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아직 행복해진다. 나는 아직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로선 어릴 적, 봄날의 소풍처럼 풍경과 유적, 그리고 예술을 그저 스쳐 지나갈 필요가 없다. 오히려 하나의 예술품 앞에서 이와 관련된 수많은 연관성 들을 상상해낼 것이었다. 그 앞에 있을 나와 따사로운 햇살과 주변 풍경을 상상할 때마다 행복해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일상의 모든 것을 그렇게 예술품을 보듯 본다면 어떨까? 일상의 풍경을 그저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에도 예술품처럼 담겨 있을 의미들의 연관성을 살펴본다면, 내 삶은 환희로 가득차지 않을까? 지금 이 커피숍의 풍경을 눈에 담고 거기에 의미를 실어 본다. 우선 커피색을 닮은 장소의 풍경과 램프의 빛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그림이 있다. 산의 그림이 폴세잔의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림 자체의 스타일이 유사하다기보다 산 자체의 형태가 유사해서일 것이다. 붓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그 질감만으로 산 지역의 경작지를 만들었다. 어쩌면 저 경작지는 커피 산지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몇 년 전 다녀온 ‘안반데기’와도 같은 풍경 같기도 하다. 다만, 저 풍경은 우리나라 산지의 풍경처럼 보이진 않는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상윤이가 높은 통짜 테이블 위에서 공부하고 있다. 집중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것을 프레임에 담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상상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로트렉의 작품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상윤이도 그 어떤 예술이 될 것이다. 이처럼 현상, 사물, 실체 가운데에서 그 이면에 담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일상적인 것들로도 예술적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이 되자 점점 배가 고파왔다. 굶어도 전혀 배고프지 않고 마음의 양식만으로도 육체가 배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바에서 돌아오는 중에 비가 내렸다. 조금밖에 내리지 않아 우산 없이 걸을 만했다. 문득 친구인 대용이가 보고싶어 전화를 걸었다. 우산 없이 걷는 중이라니까 선비냐고 핀잔을 준다. 그의 말에 웃고 만다. 어쩌면 난 예나 지금이나 선비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이 정말 필요함에도 마치 돈 따위는 필요 없는 듯 살고 있고 당장 무엇을 사 먹을 때에도 돈 생각을 하면서, 또한 돈 벌기를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행복 주택에 떨어졌음에도, 온전한 집 한 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돈 따위는, 집 따위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돈이 내 삶의 우선순위는 아닐지라도 후 순위에는 있어야 할 터인데, 아직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부모님은 늙어가고 친구들은 자리를 잡는데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성영이와 수지는 돈을 벌어 빈을 가는데 나는 그저 상상의 빈만을 여행할 뿐이다. 동경하는 것들이 별이 되어버리고 별을 따기보다 그저 바라만 본다. 그리고 저 별이 점점 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긴다. 나는 선비이다. 아주 허생다운 선비이다. 찬물 마시고 이 쑤시는 그런 머저리같은 선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