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노력과 역할 / 가족의 마음.

나의 일상 여행기 (34)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과학책을 다룰 때면,
"내가 중고등학교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 미래가 바뀌었을 것이다."
싶은 것들이 있다.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아도 7시 등교를 했다. 커피 한잔을 타고 홀로 IT 카페에 앉아 한 20분가량은 인터넷을 하거나 유머 글을 보았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타이머 앱을 켜고 '부분과 전체'를 펼쳤다. 이제 이 책도 막바지를 향해 간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와 사색이 필요한 질문들이 많아 읽는 내내 지루하진 않았다. 특히 양자역학은 고전 물리학의 개념을 통해 설명해야만 하는 딜레마나 과학의 진보에 대한 견해, 닐스 보어의 상보성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등은 비단 현대 물리학의 이해뿐 아니라 사회나 다른 학문을 바라보는 이해를 넓혀주는 듯했다. 아마 나에게 자식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을 것이다.

독서 모임에서 과학책을 다룰 때면, "내가 중고등학교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내 미래가 바뀌었을 것이다." 싶은 것들이 있다. 지금처럼 문과가 아닌 이과를 가거나 과학이나 공학 계통으로 갔을 거라는 말이다. 쉽게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나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이나,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윌슨의 '통섭', 쿤의 책 등의 책이 그러하다. 이 책 역시 그런 책이다. 많은 책이 대체로 하나의 주제를 다룬다면, 이 책은 상당히 많은 분야를 메타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과학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해를 따라가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물론 고등학생 때의 나라면 지금처럼 읽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적 허영에 빠져서
한 학문에 푹 담가보지 않고
두루 다루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모든 학문은 교양 수준으로 배울 때는 재밌어도 학문적으로 접근할 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나 역시 교양적으로만 접근하는 수준이라 재밌는 것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내 독서 행위가 수박의 겉만을 핥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저 '지적 허영에 빠져서 한 학문에 푹 담가보지 않고 두루 다루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두루 아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적 분야가 있는 상태에서 두루 아는 것은 학문 간의 통섭을 통한 창조적 시각을 만들어줄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그저 딜레탕트적(예술이나 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 삼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구양수는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말하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상량이라고 했다. 다상량이 가장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저 생각만으로 끝나는 것은 공허하며 그것을 통하여 창조적인 무언가를 완성하는 것 또한 딜레탕트적 지식인이 되지 않으려면 대단히 중요하다. 다작, 또는 자신의 심연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 올려, 불완전한 언어로 창조해 내는 글쓰기는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송나라의 구양수가 다작이라고 말한 까닭은 다작 가운데 명작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작은 그저 쓴다고 나오기보다는 많은 독서와 사색 끝에 나오는 것이다.


지식인은
새로운 지식의 부모인 동시에
사회의 지식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자녀이다.


책 ‘부분과 전체’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어떠한 판단, 정확하게는 원자력에 관한 기술개발지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 합목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과학과 정치 행위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것이 힘에 부친다고 말하면서 학문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하기도 한다.

직업으로서 정치인이 존재하는 까닭은 사회가 다변화됨에 따라 그만큼 그들이 전담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가 전체의 운영과 더불어 자신과 자신을 뽑아준 이들의 이해를 대변한다. 그래서 때로는 국민 전체의 이익이 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 아닌 집단 간 이해관계에서 선택된다. 이들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제 삼자로서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선택을 하거나 그러한 선택을 위하여 비방과 모략마저 시행하기도 한다. 지식인은 이러한 추태를 보며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느낄 것이며 때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정치적 권력마저 내던져버리고 학문의 상아탑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발견한 지식이 다른 이에게 부당하게 또는 비합리적으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을 다른 이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지식은 그들의 어린 자녀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하며 때로는 이를 위하여 희생해야 한다. 그래야 그 지식이 올바로 성장해 사회의 등불을 밝힐 수 있다.

지식인은 새로운 지식의 부모인 동시에 사회의 지식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자녀이다. 누구도 사회를 떠나 성장할 수 없으며 지식인은 그 사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사회에 받은 만큼 보답을 해야 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지식인이 사회를 등한시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로는 합리적 주장이 이해관계에 있는 많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거나 또 때로는 그들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식인의 사명은 기독교적 사명과 맞닿아 있으며 종교인에게는 종교를 전파해야 함이 마땅한 의무이듯 지식인은 자신의 지적 견해를 끊임없이 설파하고 토론하는 게 마땅하다.


때로는 어떤 고충이 있어도
미안한 마음에 참고 있다가
일이 터지거나
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사정을 말한다.


영어 모임은 시험 기간 탓에 참여자가 없었다. 혼자 공부라도 하려고 예약해둔 스터디룸으로 갔으나 그곳에는 밤새워 공부하던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굳이 공부하던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아, 그냥 계속 공부하라고 말하고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여니 방이 난장판이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다음 영어 모임을 위한 자료를 만들고 잠시 낮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니 1시가 넘은 상태였다. 족히 2시간은 잔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이렇게 2시간을 내리자면 결국 조삼모사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 한숨이 나왔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 내가 한심했다. 물론 이렇게 될 것을 고려했지만, 그리고 낮잠도 내가 선택한 것이라 할 말은 없다. 그저 의지가 약하고 할 일이 딱히 시간에 따라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날씨가 흐렸고 비가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오후 기상예보를 보니 좋아질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동생을 만나러 천안에 가면 될 것 같았다.

오늘이 아버지 생신이라 동생을 만나 토요일에 함께 내려갈 생각이었다. 동생은 토요일 오전까지는 계속 일해야만 했고 나는 일요일 아침에 일이 있어 일요일 새벽 차로 올라와야 했다. 아버지와 밥이라도 먹으려면 토요일 저녁 시간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말 아르바이트도 빼고 내려갈 준비를 다 마쳤는데,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게 떠올랐다. 부리나케 전화하여 물어보니, 아버지는 당신 생일인 것도 까먹고 있었다. 어디냐고 물어보니 당진에 일하러 왔다고 했다. 내일까지는 바빠서 시간이 없고 일요일은 교회를 가야 해서 안될 것 같다고 한다. 오늘도 꼭두새벽부터 나왔고 내일도 그럴 거라고, 어머니도 일하러 새벽에 나가셨다고 한다. 내일 밥 먹을 시간이라도 되냐 물으니 오지 말라고 하신다. 혹시나 우리 생각해서 그러는가 싶어 되물으니 정말 시간이 없다고 하신다. 그럼 다음 주는 시간 되느냐고 물으니 확답할 수는 없으나 가능할 것 같다 하신다. 그럼 그때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동생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밥을 먹으러 가격파괴 분식점으로 갔다. 이모에게 전하니 이모는 자식 힘들게 안 하려고 그러는 거라시며 "그래도 가야지!"라고 핀잔을 주신다. ‘나도 정말 일정이 빡빡한 나머지 안 갈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닌가? 어머니, 아버지는 늘 그래 왔기에 정말 이번에도 그렇게 우리를 생각해서 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가족이 안 그러겠느냐마는 우리는 서로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한다. 그리고 때로는 어떤 고충이 있어도 미안한 마음에 참고 있다가 일이 터지거나 대비하지 못하고 있을 때 사정을 말한다. 그래서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다. 차라리 미리 말해줬으면 대비라고 하거나 준비라도 했었을 텐데, 모르고 맞아버린 펀치처럼 더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다고 했을 때, 미리 계획이나 필요한 돈을 이야기했으면 마련하기가 좀 더 수월했을 것이다. 180만 원짜리 기계의 환불에 대해 미리 말해줬으면 지금처럼 지지부진하게 일을 끌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오시는 저녁 즈음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기로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들의 시기가 지나고
황혼의 길에서
그 다음에 올 이들을 위해
자기의 자리를 내어주었겠지.


날씨는 흐림인데도 비가 좀 전보다 많이 내리는 듯해 집에서 우산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천안 직통 시외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시간 여유가 좀 있어서 지하철을 타도될 것 같았다. 어차피 휴대폰으로 글을 쓰며 갈 거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상관없었다. 동생이 퇴근하기 전에 근처 커피숍에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유일한 문제는 지하철을 타고 갈 경우 서서 갈 수 있다는 점인데, 휴대폰 자판을 두드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많지 않은 이상 상관없었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움을 느꼈다. 여하튼 다행스럽게도, 전철에서는 다행히 모두 앉아갈 수 있었다. 특히 구로에서 천안행 전철은 처음으로 급행을 탔는데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다.

천안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동생 집 근처인 천안 터미널에 내렸다. 천안 온 김에 간식용 호두과자를 사서 출출함을 달래고 마저 글을 마무리하려고 인근 스타벅스로 향했다. 동생은 집에 돌아와 운동하고 보컬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서 할 거 다 하고 연락 달라고 했다. 오히려 글을 마치려면 늦게 오는 게 나로서도 좋았다. 커피숍은 오늘 막 오픈한 곳이라 그런지 나무 테이블에서 니스 냄새가 났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그런 건지, 스타벅스라 그런 건지 첫날임에도 매우 분주했다. 스타벅스 리저브가 공간 중앙에는 프리미엄 커피를 위한 공간이 넓게 있었다. 그 때문에 넓은 공간에도 테이블이 다른 곳보다는 많지 않았다. 문득 해당 공간에 대하여 리저브 매장으로서의 공간 활용과 오로지 기존 스타벅스 매장으로 공간을 활용할 때 어떤 게 좀 더 이익이 높을까 궁금했다. 리저브 프리미엄 커피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리저브 매장 운영에 따른 공간의 협소화보다는 오로지 에스프레소 매장만을 운영하며 테이블을 더 두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이곳이 터미널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테이블에 머무는 손님보다 테이크 아웃 구매자가 더 많을 수 있고 이것이 리저브 매장 운영에 영향을 미칠는지는 알 수 없다.

앉아서 일기를 쓰다가 아까 어머니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같은 질문을 재차 물어보니 어머니도 역시 아버지와 같은 의견이었다. 다음 주말에 내려가기로 약속을 잡고 동생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일기를 마무리할 때쯤에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짐을 정리해 밖으로 나갔다. 천안 시내는 사람들이 분주한 게 꼭 저녁의 강남 한복판과 비슷했다. 둘 다 저녁을 안 해, 주변을 돌아보다가 일본 가정식 집에 들어갔다. 사케 동과 돈카츠동, 그리고 우동을 시켰다. 오래간만에 먹는 거라 이걸 비벼 먹어야 할지, 그냥 떠먹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소스 넣고 대충 비벼서 떠먹었다. 먹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한입을 떠먹으니 와사비의 알싸한 맛과 연어의 고소함이 입속을 감쌌다. 봄 야채의 아삭함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밥알의 따스함과 연어의 차가움은 잘 맞는 조합은 아닌 듯했다. 생각해보면 회덮밥도 그런 조합인데, 차라리 애매한 것보다 그런 부조화가 나았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확실한 차이는 오히려 입안에서 양쪽의 오묘한 느낌이 드나, 얼지 않은 연어는 식감과 고소함은 좋았지만, 그 온도는 아무래도 내겐 어색했다. 어색한 온도 차 말고는 모두 좋은, 야채의 아삭거림도, 알싸한 와사비마저도 좋은 음식이었다. 일시적인 배고픔을 그렇게 채우고 극장으로 향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을 보고 나왔다. 나의 20대와 30대를 함께하던 영웅들이 퇴장한다. 시기가 지나면 그렇게 누군가는 퇴장하고 누군가는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한다. 시간을 거슬러 내 아버지도 그러했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러했겠지. 그들의 시대가 지나고 황혼의 길에서 그 다음에 올 이들을 위해 자기의 자리를 내어주었겠지. 나도 언젠가는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그게 바로 운명일 테니까. 수천, 수만 가지의 운명의 갈림길과 그 끝에서, 바라건대 이 세상 끝나는 날 행복했었더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전에 촛불처럼 내 이름을 밝혀 작은 공간에 담긴 슬픈 어둠을 잠시만이라도 몰아낼 수 있기를.

이전 08화불안한 시간의 극복 방법/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