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과 관계 맺기 / 교감(交感)

나의 일상 여행기. (35)

by Chris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사랑하는 이와 아침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리움을 머금는 일이다.


동생 집이다. 아침부터 동생은 출근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누워있는 채로 마치 엄마처럼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을 괜히, 늦는다고 빨리하라고 보챈다. 동생이 옆에 있어서인지 오늘 아침은 다른 날보다도 꽤 편안한 느낌이다. 베란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도 제법 싱그럽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침의 고독으로부터 오는, 죽음과도 같은 병은 사라지고 살아 숨 쉬는 것들로부터 오는 희망이 일깨워진다. 때로는 아침나절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토록 그리운 까닭은 그것이 비록 옅은 잠을 깨우는 듣기 싫은 소리일지라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뉴스 소리,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 국이 끓는 소리, 어머니가 깨우는 소리, 알람 울리는 소리, 창밖으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이 소리가 햇살을 받아 내게로 전달될 즈음에는 사랑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무르익어 그리움이 된다. 사랑하는 이와 아침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리움을 머금는 일이다.

한참을 침대에서 뭉그적대다가 일어나니 동생은 이미 회사에 갔고 시계는 9시 30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오늘 할당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은 씻고 집 앞 커피숍으로 향했다. 집 바로 앞에는 2층 건물의 스타벅스가 있었다. 오늘의 커피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해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에 커피 향과 초콜릿 맛이 감돈다. 잠시 후 카페인 효과 때문인지 몽롱했던 정신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침의 커피숍은 한낮의 커피숍보다 좋다. 무엇보다 사람이 적어 왁자지껄하지 않고, 온화한 햇살 가운데 분주하게 하루를 준비하는 풍경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정돈된 테이블 위에 앉아, 집안일이나 또는 아침 산책 후 커피 한 잔을 즐기려는 이들의 여유로움을 바라보는 것도 제법 나쁘지 않은 감상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도심 속의 풍경이지만, 그 느낌은 새들만이 지저귀는 온화한 숲 속의 풍경과 닮은 듯했다. 그 점이 아침의 한산한 커피숍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아침 커피숍으로 나와 이런 기분을 느껴보고도 싶었다. 일상의 답답함이나 고독이 없는 단조로운 풍경이 좋았다.


나의 중심을 향해
관계를 맺는 행위는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알기 위한 행동이다.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썼다. 쓰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보다 많은 사람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창가 쪽 소파에는 중년 부부가, 내 옆자리에는 젊은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마주 앉았다. 중년 부부는 각자 책을 보고 휴대폰을 하고 있었고 젊은 연인들은 계속 쉬지 않고 조잘조잘 지저귀고 있었다. 테이블 끝에서 혼자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을 제외하고 좌석 모두가 둘 이상이었다.

둘이라는 숫자는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라도 관계를 이루려고 한다. 그 관계가 많아지면 무리가 되고 사회가 된다. 만약 누구에게도 관계를 내릴 수 없거나 혹은 그 관계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지 못하면 그 관계는 사물이나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객관화하여 관계를 맺으면 외부로 관계의 영토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핵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파고들어 가면 그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묻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보석과 같은 광물도 있지만 다르게는 쓰레기나 추악한 해골이 발견되기도 한다. 환한 영토와는 달리 핵을 파고들어 갈수록 빛은 닿지 않아 순전히 우리의 감각으로 더듬어야 하고 때로는 어둡고 좁은 구멍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절망하기도 한다.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이처럼 지구 위에서 중심핵을 향해 땅을 파는 행위이다. 나의 중심을 향해 관계를 맺는 행위는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알기 위한 행동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시도할 수 있으며, 실현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고독이나 고립이라고도 부른다. 그 시도는 나의 의지로 되기도 하지만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불안정할 때에 발생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그렇게 자기 발밑의 땅을 파는 행위는 그 과정 중에 금맥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자기 묏자리를 파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쇠안 키에르케고어는 절망이라고 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인 둘은
절망과 고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최소한의 숫자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숫자인 둘은 절망과 고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최소한의 숫자이다. 적어도 신과의 관계가 필수가 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서 사랑이나 우정으로 맺어진 깊은 관계는 절망과 고립으로 빠지지 않도록 묶어준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없어도 자신을 발견하는 발굴작업을 멋지게 완수하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홀로 사는 것이 힘든 까닭은 혼자서 고독한 상태에서 땅을 파고 주변을 볼 때, 자신을 세상에 묶어둘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깊게 판 구덩이 속에서 위를 바라보고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고 소리지르고 묶여 있는 관계의 끈을 흔들어도 아무 반응이 없을 때, 바로 절망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꿀 떨어지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테이블 위의 둘을 보고 지금은 잘려나간 수많은 관계가 떠올라 상념에 젖기도 한다.


닿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박혀,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금에 만족하려는 심보가 아닌가?


점심때가 넘어서 동생이 커피숍으로 올라왔다. 글도 어느 정도 마무리돼가던 상태였다. 그를 데리고 시내로 가서 어제 못 먹었던 돈가스집으로 갔다. 경양식과 치즈 돈가스를 시켰는데, 나쁘진 않았으나 동생은 기다려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사실 치즈 돈가스로 모짜렐라 치즈가 길게 쭉 늘어나는 것을 상상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밥을 먹고 돈을 내려니까 동생이 계산해버렸다. 내가 아직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해서 거의 매번 이렇게 얻어먹는다. 이 나이가 되도록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때이다. 나도 그 정도는 여유 있다고 말해도, 이미 형제와 친구들이 내 사정을 알고 먼저 살 때면, 나 역시 못 이긴 척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을 때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앞선다. 그러고 나면 꼭 보답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다가도, ‘과연 내가 보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이어서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친했던 친구 상원이에게 얻어먹을 때면, 그 친구는 언제나 "너 크면 소고기 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친구와는 멀어졌고 나는 아직도 소고기나 비싼 음식을 대접할 형편이 못 된다. 어쩌면 이러한 부담감이 이따금 그 친구가 생각나도 연락을 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어쩌면 나는 남에게 빌어먹는 게 익숙한 속물에 지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잘 살 수 있을까? 어쩌면 잘 산다는 게 내겐 허락되지 않는 것, 닿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박혀, 무언가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지금에 만족하려는 심보가 아닐까? 어쩌면 나는 욕심 없음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가난과 검소를 은총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이런 생각이 머리 속을 휘돈다.


노래는 기술 또는 기교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점심을 먹고 한동안 거리를 거닐었다. 유동인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거리답게 행복해 보이는 젊은이들로 넘쳐났고 식당 곳곳은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디자인으로 가득했다. 잠시 오락실 화장실에 들어간 동생을 기다리며 문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그 거리에는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주름 많고 푹석 푸석한 외모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어느덧 이렇게 나이를 먹었구나 싶어서 조금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선크림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깊은 주름의 아저씨였다. 몸은 운동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얼굴의 주름은 마치 해가 지나고 나면 생기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나이를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었다. 저 해맑은 아이들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흔적이었다.

노래방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노래를 불렀다. 이따금 노래에 감정을 실어 부를 때면,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교회의 찬양단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내가 부르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혹은 감동의 표정을 지을 때, 그 모습은 실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물론 내 노래 실력에 감동하여 따라 부른다기보다는 교회의 찬양 자체가 영적인 교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좋던 그 시절에, 이따금 내 노래가 하늘에 닿길 바라며 부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짜릿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노래가 신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찬양의 교감은 신과 나 사이에서뿐 아니라 나와 눈앞의 성도들 사이에도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나와 눈앞의 사람들 간의 교감을 통해 마음에 자신감과 치유됨을 느끼게 해줬음은 분명하다.

노래는 기교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인상주의 화가의 화풍이든 다른 화풍이든 그 안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발견한다. 그림의 주제나 내용뿐 아니라 그 표현 형식 속에서도 존재한다. 그림을 잘 그린 것 같지 않은 현대미술 속에서도 그 내용과 표현 형식이 그림 전체의 감정을 넘어 작가의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참고로 이때의 표현 형식은 '나, 이만큼 잘 그릴 수 있어.'라는 식의 컴퓨터적 기교가 아니다. 예술가만의 스타일이다. 음악 역시 그렇다. 훌륭한 가수는 기교가 뛰어나지 않아도 마음을 가사와 음에 맞게 적절히 쏟아 그 감정을 충실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대화에 신경쓴다고
고기에 신경을 놓쳐서도,
고기 때문에 대화에 신경을
놓쳐서도 안된다.


노래가 끝나고 동생은 잠시 보컬 연습을 한다고 하여 학원에 따라갔다. 그가 작은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동안 나는 응접실 테이블에 앉아 아직 남은 일기를 작성했다.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에 노트북을 꺼내 다음 주 영어 모임에 쓸 자료들을 만들었다.

작성하는 동안 동생의 노랫소리가 문밖으로 들려왔다. 갑자기 동생이 말했던 목표가 떠올랐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고 정확히 어떤 게 문제인지를 지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었다. 이런 건 더 폭넓은 이론적 지식으로 무장한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니다. 정확하게 문제를 잡아 고쳐주는 것은 분명히 경험적인 지식 또한 풍부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부분과 전체'에서 닐스보어가 말한 전문가의 자질인, 큰 오류나 실수를 피할 수 있는 그리고 피하도록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쌓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집에 올라갈 버스를 타기 전 동생과 저녁을 먹었다.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먹으며 가볍게 맥주 한잔을 했다. 자꾸 동생이 고기를 태우길래, 가위와 집게를 빼앗았다. 잘 안 태우려면 타기 전에 틈틈이 고기가 익는 상태를 봐뒤집어 줘야 하는데, 동생은 온 신경을 대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거의 듣는 입장이었기에 그보다는 잘 구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회식이 있을 때면, 고기를 잘 구워서 상대방이 맛있다고 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어느 장소에 가도 대체로 내가 구웠다. 그러면서 배운 건, 고기를 구울 때엔 고기에 마음을 충분히 써야 한다는 점이다. 대화를 하면서도 고깃집에 왔으면 고기에도 신경을 써야 전체적으로 만족할 수 있다. 대화에 신경쓴다고 고기에 신경을 놓쳐서도, 고기 때문에 대화에 신경을 쏟지 않아도 안된다. 둘다 잘 할 수 있어야만 만족스러운 회식이 된다.

고기를 먹고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토요일이라 올라가는 길이 막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창을 바라보며 문득, 동생과 함께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동생을 깨워 밥을 먹이고 회사로 보내고 청소와 집안일을 가볍게 마무리하고서 집 앞 커피숍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돈벌이는 적겠지만, 재택이나 과외 같은 일을 하여 내 몫은 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통해 벌어먹고 수 있다면 좋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꿈을 오늘의 경험을 통해 투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동생 집은 비좁았고 나는 책이 많아 옮겨 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

버스는 밤을 건너 인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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