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속의 결단.

나의 일상 여행기. (47)

by Chris
사진: Photo by Ian Chen on Unsplash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조금은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아프다. 오른팔을 곧게 들어 왼쪽으로 꺾어 스트레칭을 하니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두 손을 깍지껴서 가랑이 아래 바닥에 간신히 댔다. 예전보다 유연함이 부쩍 줄어든 게 느껴졌다. 나이 듦의 흔적일지 근래에 운동을 안 하던 영향인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그토록 노력해서 이뤘던 것들이 사라져 간 듯해 서글펐다. 단단하고 유연한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했던가? 시간은 기억의 망각만을 주지 않았다. 정신의 노화와 망각만큼이나 신체마저 초라하게 만들었다. 시간은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망각하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신체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하던가? 누가 그런 서글픈 몸으로, 그렇게 살아가라고 한 적 없다. 나 스스로 게을리한 죄며 크로노스는 나태의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억지로 팔을 좀 더 밑으로 내려보았다. 근육이 늘어나는 고통과 함께 시원함이 밀려왔다. 속으로 십여 초 가량 세고 다시 올라오니 허리 아픈 게 좀 가셨다. '어제 등록한 헬스장은 보류하자. 그러나 다음부터는 절대 빼놓지 말고 가자!'라고 다짐했다. 운동 시간을 예전처럼 두세 시간 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글 쓰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것은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이 일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집중해야만 했다. 요즘 같은 때에는 하루에 다섯 시간, 여섯 시간도 모자랐다. 마음 같아서는 영어 모임마저 정리하고 온종일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쓴다고 하더라도 하루의 일기 전부를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생각은 점점 더 많은 생각을 만들었고 나는 그 생각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분주했다. '헬스장은 기존에 저녁 늦게 희찬 씨 함께 하던 대로 타바타 운동으로 압축적으로 하자!' 그러면 스트레칭과 샤워까지 하는데 1시간 안쪽으로 끝낼 수 있을 터였다.

때마침 희찬 씨로부터 어제 다시 운동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으나 이미 마을에서 운영하는 헬스장에 등록한 터라, 그 친구에게는 따로 운동하도록 일러두었다. 타바타만 한다면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도 기존에 운동장에서 하던 것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세 먼지나 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만으로도 한 달 회비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물론 이는 한 달에 1만 5천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저렴하더라도 내가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기구들이 있으며 관리도 잘되는 편이었다. 다른 이유로는 새롭게 시작한 아침 기상 모임 때문이었다. 격일마다 저녁 12시가 넘어서 운동을 했었는데, 이렇게 계속하게 되면 분명히 아침에 일어나는 데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약 한 달 가량을 운동을 못 한 까닭은 나의 게으름 때문이며 그 게으름은 희찬 씨와 경진이가 시험 기간으로 운동을 쉬게 되면서 발생했다. 그가 쉬고 있으니 나를 움직이게 한 하나의 동력이 사라진 셈이었다. 이들 때문에 운동을 어쩔 수 없이 못했다고 핑계를 대면 책임감이나 죄의식 따위는 느끼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점차 길어질수록 지금의 삶이 익숙해져 갔다. 시간이 흘러 시험 기간이 끝났음에도 난 이들에게 운동하자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이들의 무성의함에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시험 기간을 겪어봐서 그들을 이해하지만, 이틀에 30분 정도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비용없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과 노력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혼자 운동을 시작하기로 다짐한 진짜 이유는 실망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마음, 그들을 핑계 삼아 운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실, 그들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단은 분명히 합리적인 결정도 아니었고 또한 결코 내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결단도 아니었다. 만약 그들을 붙잡고 계속 운동하기를 요구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나은 몸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허리 통증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역시 그때 계속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고독의 냄새를 맡게 되면,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사소한 모욕감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된다. 앞으로 얻게 될 이익보다도 당장 모욕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스스로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허리춤에 묶어둔 끈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깊은 낭떠러지로 한없이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 정신 차려 한숨 한번 깊게 쉬고 이 정신의 낙하를 멈출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붙잡는다. 그때가 되면 내가 있는 곳은 그전보다 더 어두운 심연에 가까운 곳이다. 내가 살던 위 세상과는 멀어지고 아래와는 가까운 곳에서, 잠시 위를 한번 보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거기 누구 없어요?"라고 양쪽으로 부르짖어 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인지 늑대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누군가의 의지는 믿되 행동하기를 기대하지 말자!'라던 다짐은 까맣게 잊고 그들이 의지만큼 행동하기를 기대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을 의지하게 됨에 따라, 점점 그 기대가 실망이 되고 운동에 대한 제 다짐조차 믿지 못하게 된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 대한 실망이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결단은 내 마음을 그것으로부터 날 지키고자 한 본능적 반응이 아니었을까?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 마음이 먼저 날 지키려고 반응한 것이 아닐까? 그 덕분에 나는 다시 의지를 바로 세워 행동에 이르게 할 새로운 준비를 하게 되었다. 한동안은 고독하고 방황했지만, 결국 내 의지를 믿은 결과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비록 이제는 나를 지탱해 줄 ‘다른 누군가’라는 끈도 없어 오로지 두 손으로 벼랑에서 버텨내야 하지만, 아마 이로 인해 나는 내 의지대로 벼랑을 오르내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다른 실수 탓에 더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게 될 때도 옛 경험을 추억하며 버텨낼 수 있으며, 때로는 내 의지대로 더 밑으로까지 자유롭게 내려갈 수 있는 그런 강인한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렇게 타인에게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옳은 일을 행하고 바른길을 찾아 끊임없이 실천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