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긴 시간 글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긴 하나 동시에 다른 일을 하기 어렵게 한다. 어느 한 사람이 움베르트 에코의 장서를 보면서 책을 얼마나 읽는지 물어보았을 때, 에코가 "요즘에는 글을 쓰기 때문에 책을 읽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던 게 문득 생각났다. 글을 쓰는 것은 분명히 책을 읽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으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독립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문제에 빠지게 된다. 특히나 요즘같이 글을 길게 쓸 때면,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에 미안함을 느낀다. 집중해서 최대한 빨리 쓰고 책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슨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일 죽을 것 같이 살라.'라고 하지만 내일 죽을 것이라면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듯 자기 일에만 묵묵히 매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진짜 내일 당장 세상이 망할 확률은 낮으니 이런 말도 할 수 있겠지. 차라리, '당장 내일 죽는데, 할 수 있는 게 이 일밖에 없는 것처럼 살라.'가 좀 더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그전의 게으름과는 상관없이 어떤 일을 열심히 할 당위성이 좀 더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내일 죽을 거면 이 일을 하고 있겠어?'라는 우스개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글을 쓰기 시작할 때도, 점심이 지나고서 빈둥거릴 틈도 없이 30분 안에 운동을 마치려고 죽을 것처럼 헉헉대는 자신을 보며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다른 것들도 이렇게 2시간 운동한 효과가 30분 안에 나오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빈둥댈 틈도 없을 것이다.
운동이 끝나고 용철 씨와 조금은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리즘의 해결 능력은 얼마나 문제를 많이 풀어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알고리즘 관련 순위를 결정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1등의 문제 풀이 수는 1만 개가 넘으며 그다음과도 엄청 차이가 난다.” 이러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는 것이나 책을 보는 것도 이처럼 학습의 총량에 비례할 것인가? 이는 시간의 총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간의 총량이 물량의 총량과 비슷할 수는 있으나 시간을 많이 들이고서도 학습의 총량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는 알고리즘을 빠른 속도로 잘 풀어서 랭킹을 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 기준은 없어도 글쓰기나 독서나 그 총량이 많을수록 실력이 좋아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그는 작가들에게도 '랭킹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공모전을 통해 작품 자체의 우열을 정하기는 하나,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면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으로 작품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다만 판매량에 따른 순위가 예술성의 기준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예술성은 주관적 평가의 영역에 속하는 게 많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다만, 어느 경지에 오른 이들을 인정하며 이들을 거장이라고 부르곤 한다. 거장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예술계에 확고한 영역을 확보한 존재이다. 정말 모든 작가에게도 비교적 객관적인 랭킹 시스템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양성이 사라지고 선발 기준에 잘 부합하는 글을 쓴 이들이 성공하게 될까?
용철 씨는 이번에 취업했다고 내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 알고리즘 경진 사이트에서 우리나라 40위권, 전 세계에서는 1,400위 정도에 들게 되어서 그게 주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줄 알았는데, 이번에 그가 도전한 일들은 자신의 경력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었다. 그는 비록 성적은 좋지 않으나 대학 시절 알고리즘 하나에 몰입해서 성공한 경우다. 매일 취미로 알고리즘 사이트에서 문제를 푸는 것을 즐겼고 그곳에서 자신의 순위가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실로 알고리즘 덕후였다. 그러한 덕질이 구글 인턴부터 지금의 취업까지 이어지게 해 주었다.
그를 보면 많은 것을 느끼는데, 그중에 하나가 좋아하는 것을 몰입해서 해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사례인 점이다. 더욱이 자신의 능력은 자신만이 아는 것이 아니라 각종 대회나 객관적인 능력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곳에서 수상하거나 순위를 쌓았다는 점이 나로서는 참으로 배울 점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의 가장 큰 단점은 내 실력을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이렇다 보여줄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물론 대학 시절에는 여러 공모전을 통해서 내가 가진 자질을 뽐내기도 했지만,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부터는 자신을 보여주는 어떤 활동도 하지 않고서 그저 되고 싶다고만 소망했던 것이다. 또한, 나는 작품의 순위 자체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했고 도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나 자신이 아직도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노력하면 뭔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어리석은 소망 속에서 몇 년을 보내버렸다. 물론 이게 허송세월만 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변명을 좀 하자면, 좋은 글을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많은 책을 읽었던 것은 지식의 확장과 통찰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부끄러운 것은 '과연 내가 그러면 용철 씨만큼의 열정으로 책 읽기를 하였던가?'라는 점이다. 내 주변에는 정말 일명 '책 덕후'라고 말할 법한 친구들이 있었다. 비록 나이가 어림에도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책을 읽었으며 또한 놀랄만한 기억력으로 책에 관해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이 책을 삶과 사회를 위한 통찰의 도구로써 사용하는지, 단지 우월감과 지식의 습득용으로 사용하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들에게는 용철 씨만큼이나 책에 대한 압도적인 열정이 있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남들과 같은 대학 생활을 못해본 아쉬움이었다. 소위 대학의 낭만(?)이라는 건데, 연애하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캠퍼스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등의 공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일컫는다. 이들은 그 시간에 오로지 그 하나에만 몰입을 했다. 좋은 말로 하면 하나에 몰두하기를 잘하는 기질이 있는 것이고 나쁜 말로 하면 사회성이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이러한 기질이 또한 하나에 몰입하게 하여 나름의 성공을 거둔 요인이기도 하겠지만, 남들이 하는 평범하고 다양한 경험을 못 누리거나 뒤늦게 누리면서 나타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나의 능력을 높이려면 다른 능력을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운동에서 인터벌 트레이닝처럼 죽을 것 같이 하는 게, 시간의 효율을 높여 어떤 능력을 단기간에 얻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인 듯했다. 그런 인터벌 트레이닝처럼 당장 죽을 것처럼 하되 시간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은 또 없을까? 몸의 운동 말고 뇌의 운동에도 그런 게 있다면 도전하고 싶다. 내일 죽을 것처럼, 다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것처럼.
나는 그에게 이제 취업도 했으니 일하기 전까지 해보고 싶었던 다른 것들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올 계획이라고 말해서 잘 생각했다고 했다. 소개팅도 좀 해보고 대학 생활의 마지막 낭만을 즐겨보라고, 그리고 취미 활동을 꼭 만들어보라고 조언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생활은 취업하고도 단조로워질 것 같았고 또 어느 하나에 몰입해서 살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월천 라운지에 돌아와 작업하던 글을 마무리했다. 하루의 분량을 거의 다 채웠을 무렵, 집에서 연락이 왔다. 환불을 약속한 업체에서 연락을 줬느냐는 것이었다. 애당초 어제 돈을 보냈어야 하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어서 안 그래도 지금 할지, 내일까지 기다려보고 소식이 없으면 다시 조정기관에 맡길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아버지는 안 주면 바로 신고하라고 하지만, 민사로 가게 되면 돌려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듯싶어 비교적 원만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또한, 그쪽도 생계를 걸고 사업하는 처지에서 공정위를 통해 제재를 거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일단 알았다고 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업체의 사장은 아직 다른 곳에서 대금 지급이 늦어서 못 보냈다며 다음 주까지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고서는 우리더러 훗날에 어떻게든 볼 거라면서, 당신의 아버지는 사업을 잘하고 있느냐며 악담을 퍼부었다. 환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자 짜증스러웠다. 충분히 시간을 봐주고 스스로 약속까지 했음에도 지급이 안 되고 하루가 지나 기다리다가 전화를 거는 건대도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약속했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약속은 깨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자신을 괴롭히는 양 역정을 낸다. 정작 몇 개월 동안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로 요구한 것이 해결되지 않아 고생한 것은 우리이고 법대로 하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조정 기관을 거쳐 공정위에 신고하게 된 것임에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피해자인 양 행동하는 이 사람을 보면서 차라리 감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민의 감정조차 없다면 이 행동을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텐데, 아버지도 사업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했던 대금 지급이 어려울 때 저런 모습을 보였을까? 아버지도 다른 사람을 돈 때문에 힘들게 한 적 없었을까? 그리고 문득 스무 살 시절, 군대 가기 바로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IMF가 터지고 몇 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사업은 점점 더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까닭 중 하나는 아버지의 온화한 성격으로 대금 지급이 늦어짐에도 단호하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수천만 원을 납품했음에도 상대 업체로부터 차일피일 미루는 것만 기다렸고 그에 따라 아버지도 다른 누군가에게 줄 돈을 못 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독하지 못한 아버지가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말로는 엄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법의 도움을 받아 강제 집행하는 것은 도의상 어긋난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안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겠느냐고 도리어 나에게 반문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끌고 해당 업체가 있는 구미로 향했다. 그때가 입대하기 바로 며칠 전이었다. 입대를 하고 나면 분명히 아버지 혼자서는 결코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다.
구미로 내려와 해당 업체 사장이 사는 집에 쳐들어갔다. 처음부터 인상을 쓰고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안에서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잔뜩 몸을 부풀리고 인상을 쓴 채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을 세게 잡아당겼다. 문 앞에는 중학교 1, 2학년으로 보이는 소년과 그보다 어린 소녀 아이가 있었다. 나는 조금은 놀랐지만, "너희 아버지 어딨어?"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가 우리 돈 떼어먹었다고 너희 아버지 어디 있느냐고 계속 눈을 부라려 가며 말했다. 소년은 마치 당장에라도 싸울 듯한 모습으로 "우리도 몰라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안방 문을 열고 방의 문이란 문은 다 열어가며 다시 떠나가듯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쪽 문을 여는 순간, 잠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치매에 걸린 듯한 백발의 한 노모가 앉아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내가 무슨 소리를 지르고 왜 그런 인상을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듯, 마치 반가운 손님을 대하듯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지금 마귀처럼 일그러졌을지도 모를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연민…, 심각한 연민이었다. 소년 뒤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며 가만히 내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가 불쌍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나를 보는 저 주름진 백발의 노모가 불쌍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다고 행동하는 나나 그 행동을 말리지 못하던 내 아버지가 불쌍했다. 나는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붙잡고 문을 닫고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아무도 없는 고작 4, 5평 남짓한 안방 한가운데를 차지하며, "빨리 이야기해. 엄마, 아빠 어디 있어?"라고 눈을 부라리며 죽일 듯이 물었다.
소년은 씩씩대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자기 방의 문을 쾅 닫고 문을 잠갔다. 나는 아예 드러누웠다. '나는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가? 다른 사람, 특히 아이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거 아닌가?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돈을 받지 못하면 아버지는 사기꾼이 되는 거고, 돈을 못 준 이들에게 대못을 박게 되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번이고 되물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로부터 십 년도 더 지났지만, 그때 그 아이와 할머니의 눈빛은 잊을 수 없다. 당장에라도 싸울 듯한, 어떻게든 벌벌 떠는 자기 동생을 지킬 것 같은 분노하는 눈빛과 할머니의 그 초승달 같은 눈빛이 생각날 때면, 아직도 공허감이 말할 수 없이 커진다. 그리고 연이어 떠오르는 건 피를 찾는 한 마리 야수와 같은 내 모습이다. 그때 거울로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야수와 같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 때면,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저주받은 공허 속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린다. 그럼에도, 설령 다음에 같은 일이 있게 되면, 나는 그들을 상처 입히더라도 내 가족을 위해 야수를 택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철저하게 감정을 버릴 수 있기를 소원한다.
이번의 일을 경험하면서 다행이라 생각한 점은 법과 제도 안에서 이들처럼 몰상식한 사람에게 제재를 가하고 돈을 돌려받을 방법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과 설령 문제가 생겨 돈을 지급받지 못하고 민사 소송으로까지 갈 경우 이만큼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왜 사람들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라고 했는지를 이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왜 아버지가 그때 나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시간이 없거나 그 돈이 지금 당장 필요했다면, 혹은 지급받아야 할 돈의 규모가 이보다 적었다면, 민사 소송까지 각오하고 일을 진행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다만, 나는 아버지처럼 사업하는 이 사람을 결코 미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연민의 감정조차 없어지기를 바랐다. 모욕적인 언사 속에서도 오로지 합리적 이성만 남아 차갑게 처리하기를 몇 번이고 바랐다. 이 사람은 내일 전화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책을 펼쳤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멍한 생각 속에서 문득, 이 사람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랐다. 왜인지는 모르나, 이 또한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연민과 비슷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대금 지급을 못해 전화로 말다툼하던 때나 다를 바 없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마 사업이 원하는 대로 잘 되었으면 제때 돈을 넣어주었겠지. 문득, 과거 그때처럼 모두가 불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