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는 하나의 줄로 연결된 것 같다. 서로 줄의 양끝을 잡고 관계를 지속하며 줄다리기를 한다. 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의 핵심은 서로 줄을 놓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잡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 적당한 힘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줄을 잡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관계들은 한쪽이 손을 놓아버려서 다른 쪽이 넘어지거나 서로 강한 힘으로 끌어당겨 줄이 끊어지고 만다.
그리고, 너무 상대를 배려해서 자신의 줄을 상대 앞까지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 그 또한, 정상적인 줄다리기는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상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과한 배려는 상대에게 불편감을 줄 수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게 거절을 잘하지 못하고 쿠션어를 쓰며 말을 빙빙 돌린다던가, 자신의 선택을 상대가 싫어할까 봐 상대의 의견만 물어보고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한 행동에 따른 상대의 반응을 지나치게 살피고 그 이후에 생기는 갈등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도 거절을 잘하지 못하고, 선택하지 못한다. 그냥 무조건 상대에게 맞추어주는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현 상황을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그렇게 회피하며 살아왔다. 갈등을 싫어한다는 명목하에 그냥 나의 의견은 중요치 않게 여기며 뭐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임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행동들이 상대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나와 같은 유형인 A 씨를 만나고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내가 한 제안에 대해 해결 가능한 이유를 대길래 다른 방안을 제시해 줬더니 다시 다른 이유가 돌아왔다. 그때부터 A 씨가 이 제안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가볍게 생각해도 된다 했지만, 말을 빙빙 돌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애매한 반응만이 돌아왔다. 그 제안을 거절한다고 A 씨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데, 계속해서 정확한 대답을 주지 않는 A 씨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수많은 거절을 빙빙 돌려가며 마무리지었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그 일을 계기로 어떤 일이든 딱 떨어지는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분명 인간관계에 쿠션어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과도한 쿠션어는 상대를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에 도움을 준 B씨도 있다. 평소 B 씨와 만나 식사를 할 때면 먹고 싶은 음식이 있냐는 B 씨의 말에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B 씨는 진짜 이상한 음식 먹으러 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나중에 더 친밀해진 후에 B 씨가 싫어하는 음식을 고를까 봐 잘 선택하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B 씨는 정말 괜찮으니까 의견을 말해주는 편이 자신에게도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배려했던 것인데 상대는 그것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않을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었다. 내 딴에는 그런 것들을 배려라는 단어에 포장해서 그 누구도 편하지 않을 행동들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나의 의견도 중요하게 여기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의 이후를 미리 걱정하고 몸을 사리는 것보다 어떤 갈등이 와도 그 상황을 직면해보려 하고 있다. 사실 이런 사소한 것들로 상대의 태도가 변한다면 사람을 잘못 봤구나 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더 깔끔할지도 모른다. 남보다 조금 더 나를 생각하는 일. 그런 일들이 모여 삶에 주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