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덩굴, 이어짐
어둠 속을 걷고 있던 날들이 있었다.
길이를 짐작할 수 없는 터널을 지나던 날들이 있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나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긴 터널을 지나온 뒤에, 그 길의 실체를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본 적 없이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월급을 받아서 책을 사주고, 색지와 풀을 사주었다. 아침이면 국을 끓였고, 저녁 설거지가 끝나자마자 다음날 찬거리를 사러 마트로 갔었다.
나는 표정이 없는 걸음으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아이들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억척스럽게 걸었다.
두 아들에게 괜찮은 엄마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자라면서 받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었다. 고급스러운 혜택을 누리게 할 수는 없었지만 발품을 팔아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고단했고, 투정을 늘어놓는 젊은 여자였다. 마음과 다르게 튀어나오는 말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남을지까지 생각할 줄 몰랐다.
어린 아들들에게 이성에 호소하는 훈육을 하고, 돌아서서 미안해하는 정말 힘든 날들이었다.
그 시절,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먼 곳을 돌아보기를 자주 했었다. 땅끝에, 한라산 정상에 함께 발자국을 남기며 가족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태백의 하늘길, 백담사 가는 길, 문경새재 길, 조계산 보리밥길. 걸을 수 있는 곳을 찾아내고 또 걸었다.
두 아들이 웃고 떠들며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 엄마를 용서하는 몸짓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하천 둑길을 지나 도시를 가로지르고, 산자락을 끼고 걸었다. 밀짚모자 네 개를 쓰고 하나로 연결된 심장을 과시하듯 그렇게 걷던 날들. 나의 참을성 없음이 남긴 아들들의 상처가 길 위에서 치유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날도 우리는 밀짚모자에 지팡이 하나씩 짚고 걷고 있었다.
아침에 집에서 들고 나온 생수가 바닥이 났고, 중간에 버스나 택시를 탈 수도 없었다. 더위에 탈진해갈 무렵 수도를 발견하고는 머리를 적시며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안도하면 눈길을 돌린 나는 사무치는 마음을 마주했다.
능소화는 담장을 넘다 못해 덩굴을 뻗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덩굴이 되어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사무치게 환한 능소화 빛깔은 어두운 터널 속을 순식간에 밝히고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나는 능소화에게 안부를 건네고 있었다.
내가 살아온 아픔의 잔상을 잘라내려고만 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나의 서투름이 지워지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그것들이 시간의 덩굴이 되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다.
내가 만든 아픔으로 심장이 아려올 때면, 나는 기억하려고 했다. 시간의 덩굴은 어디론가 이어지고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덜 서툴러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들과 함께 그라나다의 아랍 상점 거리를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