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의 변주
이팝나무가 되고 싶다.
처음 만난 순간 홀딱 반해버린 후 마음속에 울림으로 자리 잡은 말이다.
주체할 수 없는 떨림으로 서 있던 이팝나무의 기억은 언제나 나를 설렘으로 이끌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나는 복습을 싫어했다. 그렇다고 예습을 철저히 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학생이었다. 예습의 희석과 복습의 권태가 싫었던 나는, 일탈을 꿈꾸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일탈이 아니라 동경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학교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덕을 올라서면 선교사들이 남기고 간 빨간 벽돌 집들이 저만치 보이고 하늘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6년 동안 매번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음악실을 울리던 합창에서, 교실 창을 환하게 물들인 벚꽃나무에서, 해 질 녘 친구와 걷던 산책로에서, 그리고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미술실 구석에서.
유년의 그림자 뒤로, 설렘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설렘은 나를 적극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렴풋한 장면 속에는 책과 사람, 구호, 최루탄, 그리고 웃음이 있다. 직장에 나가면서는 조직의 틀을 바꾸려는 야무진 시도를 하기도 했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설렘이 항상 나를 아름다운 결말로 이끌어 주지는 않았다. 사소하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아픔이 따랐다. 그리고 사회 변혁을 논하던 나약한 호흡에는 대가가 따랐다. 머뭇거리지 않았기에, 결말이 다가오는 것을 눈앞에서야 알게 되기도 했다.
나는 그런 결말 앞에서 이미 다음 페이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설렘이 나를 힘들게 하면 또 다른 설렘으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실패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무미건조한 논리는,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 설렘으로 이어진 다음 행보에서 어김없이 같은 실수를 하고 쓰디쓴 결말로 들어갔다. 가끔 나는 후회라는 단어를 겹겹이 입고 사는 사람이라는 냉소를 스스로에게 보내기도 했다.
기회를 잃었고 사람을 잃었다. 도대체 깊이를 알 수 없는 가벼움에 나 자신을 잃었다.
다독거림으로 나의 가벼움이 용서되지 않는 나이가 되어서야 물러섰다. 신중함을 예습하고 유연함을 복습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예습과 복습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는 살기 위해 제 잎을 떨군다는 역설적인 섭리를 받아들였다. 겨울의 앙상한 모습은 봄을 기다리는 단단함이라는 것도. 조금은 철이 든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가끔 떠올리면 수많은 풍경 속에 사람들이 있다. 나를 꿈꾸게 했던 사람, 나를 지탱해 주던 사람, 나에게 설렘을 심어주었던 사람. 나는 충분히 배웠음에도 늦게서야 그 마음들에 닿았다.
비움과 견딤이 나의 힘이 되어야 설렘이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진다는 쉬운 이치를 받아들였다.
나는 이팝나무이고 싶었다.
설렘으로 꽃 피우고, 다시 설렘으로 꽃 피우고 싶었다.
하얀 이밥처럼 만발하고 싶었다.
나의 설렘이 누군가에게는 허기를 채워주는 희망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나는 설렘을 멈출 수 없었고, 또 다른 설렘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