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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May 17. 2022

40년 만에 첫 집을 샀다 #1

앞자리 4를 앞두고 독립을 했다

우편함이 꽉 차 있는 걸 봐도
그냥 난 지나쳐 가곤 해요
냉장고가 텅 비어 있어도
그냥 난 못 본 척하곤 해요.
나는 부모님과 사니까요.
- 가을방학 <동거>

부모님 집에서 산다는 건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있다. 설거지, 빨리,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주기적으로 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등. 같이 살 때는 몰랐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로 집에 종일 있으면서 비좁게 느껴진게 이유라고 해야 하나, 그때 막 시작한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집을 갖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앞자리가 바뀌는 아홉 수 때문인가. 아무튼 그때 독립이 하고 싶었다.


아무런 연고지가 없는 곳에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했다. 부동산 공부를 한답시고 1기 신도시를 훑고 다녔고 그중에서 회사에서 가까운 지역을 선정했다. 2020년. 임장을 한답시고 이 도시를 돌아다닐 때는 전 버블 세븐 지역 중에 가장 적게 오른 지역이었는데 코로나19로 돈이 풀리면서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는 시기가 되자 불을 뿜고 올라 버렸다. 이미 올라버린 집을 보며 "아 진작 공부할걸, 진작 살걸"이라는 후회는 소용없었다.


최대한 적은 자금으로 전세를 구하는 게 목표였다. '전세 자금 대출도 이참에 받아봐야지.'


독립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2021년 3개월이 남은 시기에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친구는 진짜 독립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굴었던 이유는 하루 날 잡고 전세를 구하면 바로 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비수기라는 추석이 지난 직후 가기로 마음먹은 동네 부동산에 전화를 걸고 예약을 했다. 처음 전셋집을 보러 간 날 시세보다 싼 주택임대사업자 물건이 그날 나왔다고 했다.  전세 세입자가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날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날짜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나처럼 독립을 하거나 신혼부부처럼 처음 집을 구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집이었다.

주택 임대 사업자 물건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데 그 이유는 전세를 한 번에 5% 밖에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세 보증 보험도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제약사항이 있었다. 세금 혜택을 주는 대신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이 있다. 경매를 잠깐 공부하고 나서 마음먹으면 전세를 쉽게 날릴 수도 있다는 겁쟁이가 돼서 전세 보증 보험도 셀프로 들을까 했던 터라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상황이었다.(임대 사업자가 보증 보험을 들면 전세 세입자가 일부 금액을 내야 한다)


처음 집을 보러 갔을 때 곧 이사 갈 집에 물건들이 쌓여 있어서 벽지 상태나 바닥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베란다 창고에 곰팡이가 핀 것도 몰랐다. 나중에 엄마가 와서 집을 보고 집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했었다. 가격이 싼 집에 만족하고 '도배는 내가 하지 뭐'라는 생각이었다. 이 짧은 생각이 나를 5개월 만에 집을 사게 만들었으니 잘한 결정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다시 "이 집에 전세를 들어 올래?"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복도식 아파트는 처음이었고 게다가 30년 된 아파트는 더더욱 처음이었다. 수리가 되지 않은 집에 살면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살면서 깨우쳤다. 결로로 베란다 창고에 곰팡이가 피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타일 줄눈이 까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방음이 안되면 어떤 집 강아지가 7시 알람 시간에 짖는 소리에 저절로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다는 것, 낡은 건물에서 올라오는 불쾌한 냄새라던가, 복도식 창문이 없으면 비가 많이 오는 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면서 몸소 깨달았다.


하루 2군데의 부동산을 돌고 나서 가격이 너무 매력적인 이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역세권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15분 거리의 아파트를 계약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음을 정하고 가계약금을 보내려고 했으나 주말에 바로 계약을 하자고 해서 가계약금을 보내지 않았다. 그 주 토요일 임대인을 만나서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의 10%를 지불했다. 날짜가 정해지지 않아서 계약서 상에 임의의 날짜를 쓰고 도장을 찍어서 나중에 수기로 수정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의 실수로 마지막 별지 날짜에 도장을 찍지 않았다. 이것이 나중에 대출을 받을 때 발목을 잡았다. 집을 매수하면서 알게 됐는데 매매와 다르게 전세의 경우 날짜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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