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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Sep 07. 2023

40년 만에 첫 집을 샀다 #3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

"독립하면 뭐가 좋아?"라는 질문에

"극강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라고 답 했다.


시간이 지나서

"독립하면 뭐가 좋아?"라는 질문에
"극강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따라."라고 답 한다



첫 독립 동네는 '평촌'이었다. 안양천이 있었는데 봄에 벚꽃이 예쁘게 폈다.

임장 한다고 여름 한 달 동안을 임장 다녔던 동네였다. 그만큼 친숙했다.


외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겨울과 코로나19로 고생한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여름이 오고 집의 상태가 어떤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행복하게 지냈다.


22년 봄. 또 다른 1기 신도시 부천에 임장을 자주 갔었다. 

매수할만한 집을 보러 주중에도 퇴근하고 매물을 보고 밥먹듯이 한 달 내내 동네를 갔다. 복도식 아파트는 다시 들어갈 엄두가 안 나서 고민했고 이 동네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고민이 계속됐다.

바로 길 하나만 건너면 인천시로 바뀌는데 지하철 7호선을 따라 아파트가 잘 정비된 지역이 눈에 띄었다. 부천의 복도식 아파트와 같은 가격이면 쓰리룸 계단식 아파트 24평을 매수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왜 길 하나를 건너서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부천시'와 '인천시'의 차이는 많은 게 달라진다는 걸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인천인 내 동네에서 바로 옆 동네인 부천시로 가는 버스가 없다. 부천시 부근까지 가야 부천 번화가 지역을 쉽게 갈 수 있는 버스가 있는데 그 마저도 1대였다. 살기 전까지는 생활권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불편했고, 걸어 다니기에는 다소 먼 거리에 편의 시설이 몰려 있어서 생활권이 되지 못했다. 


임장은 2월에 했지만 원하는 가격에 맞는 물건이 없어서 다음에 사겠다고 부동산 사장님께 말해두었다. 그리고 네이버 부동산 앱에 관심 단지로 등록해서 매물이 올라올 때마다 가격을 확인했다.


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집 상태가 건강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었다. 생전 처음 축농증에 걸렸다. 오래된 아파트라 결로가 심했는데 앞 베란다 창고에 곰팡이가 까맣게 폈었다. 처음에 그게 뭐 대수인가 싶었는데 그 나쁜 공기를 매일 마시니 축농증 걸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친구에게 농담처럼. 지상인데 지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했다. 

겨울에 눈이 올 때는 몰랐는데 장마가 시작하고 보니 앞 베란다 깨진 벽 사이로 물이 스며들었다. 베란다에 놓아뒀던 종이들이 전부 젖을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가장 최악은 겨울에는 없었던 처음 보는 온갖 벌레들이 나타났다. 첫 번째는 빨간 거미였고, 생전 처음 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충. 당장 이사 가야겠다고 만든 건 바퀴벌레였는데 어디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손바닥만 한 녀석을 마주하고 잠 못 들었다. 지독히 벌레에 취약한 인간이었다.


이사 갈 이유가 생기고 나니 알림이 오면 바로 매물을 확인하고 연락을 했다. 눈여겨보던 물건이 있었는데 호가가 확 낮춰져서 등록이 됐다. 바로 부동산에 연락을 했고 물건을 보기로 했다. 빨리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그 동네와 아파트를 파악하고 있었고 여러 번 급매를 놓쳤던 경험 때문이었다.


물건은 남동향으로 흔히 말하는 B타입. 탑상형 물건이었다. 선호하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동/남으로 창이 나있어서 불을 켜지 않아도 밝았다. 물건을 보고 매수를 결심했다.

"조금만 깎아주면 살게요." 부동산 사장님이 안된다고 자기 혼난다고 엄살을 피우셨지만 매도자에게 연락을 해서 가격을 조금 더 깎아서 매수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매수한다고 하니 매도자 계좌가 나오지 않는 거 아닌가.


세입자가 낀 물건이었는데 아직 2년이 채 안 됐고 계약갱신 청구권을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계약기간이 6개월이 안 남은) 나는 실거주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반드시 세입자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안 나간다고 하면 애매한 상황이고 빨리 나간다고 하면 중도금을 마련해야 하는 복잡한 세법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세입자는 이사비를 받고 나가기로 했다. 확약서를 받았다. 세낀 상태에 매도자가 2년 비과세를 받는 물건이어서 7월 특정 기간 안에만 매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세보다 급하게 판 물건이었다. 복잡한 조건을 맞추기에 처음 독립하는 사람만 가능했던 물건이었다.



"내 집 마련을 하면 뭐가 좋나요?"


안정감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든든함. 살면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내 몸 편하게 뉘 일 곳, 온전히 방해받지 않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

무슨 일이 있어서 돈이 필요할 때 집을 담보로 할 수 있다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 뒷배를 가져본 느낌이었다.

몸이 허공에 뜬 느낌이 아니라 발을 디딘 느낌이랄까.

가져보지 못하면 못 느낄 감정인건 확실하다.


토, 일 이틀 동안 조율에 조율을 거듭하고 드디어 계약금을 밀어 넣고 얼마뒤 계약서를 썼을 때,

잔금을 다 치르고 등기 권리증을 손에 쥐었을 때 그 기쁨은 최고였다. (참고로 이 기쁨은 6개월 간다.)


"누군가는 평생 내 집을 갖지도 못하고 죽는데 그 나이에 집을 샀다니 대단하다. 축하한다."

계약서를 쓰고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한 가지 복기하자면 계약 협의 중에 중도금 금액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매도자가 무리한 중도금을 요구했었다. 세입자가 나갈 경우 전세금을 줘야 하는데 내 중도금으로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경우 은근히 많다)

말이 자꾸 바뀌다 보니 감정적으로 기분이 나빠하기만 했는데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중도금을 많이 주는 조건으로 가격을 깎아 보는 협상을 해봤을 거 같다. 아님 계약을 안 한다고 강하게 나가거나. 

매수할 때 필요한 기술은 협상의 기술이다. 

부동산 사장님도 이미 매수를 해본 매도자도 경험자이다. 내가 가장 호구일 가능성이 높은데 고도의 심리전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협상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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