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 읽고 나서
이 책은 40명의 서양 철학자의 사상을 시대 순으로 맛보기로 정리한 책이다. 한 철학자의 생각이 다른 철학자에게 영향을 주어 그 철학이 확장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언젠가 얼핏 들어봤던 스토아학파, 공리주의, 실존주의, 실용주의, 최근의 정의론 등등 개념도 철학자를 소개하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 권의 책에 40명의 철학자의 이야기를 몇 장에 담다 보니 매우 축약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흥미를 끄는 주제를 발견하면 관련해서 자료를 더 찾아봐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불친절함이 독자를 학습하게 만드는 기묘한 책이었다.
철학 책을 처음 접한 나에게는 난이도가 꽤 있는 책이었다. 어느 장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는데 나중에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다수가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독서 모임이 아니었으면 진작 덮었을 책이었지만, 완독을 목표로 매일 조금씩 나눠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 느꼈던 감정은 오랜만에 좌뇌가 아닌 우뇌 영역의 뇌를 쓴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괴로우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접하니 알아가는 재미가 짜릿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질문하지 않는 남자 하나 아렌트 철학자에 실린 아돌프 아이히만(나치 친위대 중령) 이야기 었다. 아이히 마는 '최종 해결'이라는 히틀러의 대량 학살 명령을 따르기 위해 유태인을 실어 나르는 기차를 설계하고 실행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도망자로 살다가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됐는데 하나 아렌트 철학자가 그 재판을 취재하게 되었고 그 취재 내용을 기반으로 '악의 평범성'을 주제로 한 책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쓴다.
아이히만이 재판장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괴물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는 무척 평범하고 소심한 사람에 가까웠다. 아이히만은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의 할 일을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논리적으로 맞아 보이는 그 말에 설득이 될 때쯤 아래 문장을 만났다.
그는 비도덕적인 명령에 순응했다. 그리고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나치의 명령에 복종한 것은 '최종 해결' 정책을 지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받은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그 명령을 수행함으로써 그는 대량살상에 가담했다. 비록 그의 관점에서는 열차 시간표를 만들었을 뿐이라도 말이다.
시스템에 한 부품처럼 살다 보면 누군가의 명령에 따지지 않고 순리처럼 따르게 된다. 무서운 사실은 그런 태도가 익숙해지고 그런 문화가 당연시 느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불편하고 옳지 않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 옆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따르면 나 혼자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결국 고착화된다.
아렌트 철학자의 이야기를 읽으면 경각심이 들었다. 시대에 순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 모습은 평범한 나와 겹쳐 보인다. 생각하지 않고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았을 때, 삶의 방향을 정하지 않고 흐르듯 살았때 이르는 끝은 끔찍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렌트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지금 뉴스 기사에 나오는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의 주인공이 나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묻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잘 살고 있나.
책을 덮으며 인생에 한 가지는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아렌트가 말했던 하이만이 의 행동 3가지 무능성 -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으로부터 악의 평범성이 자라나지 않도록 부당한 것에 말하고, 생각하고, 공감하도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머지않아 당신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폴 부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