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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Jan 21. 2019

로모 카메라여야 하는 이유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과 찍히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고
찍히는 사람의 표정이 담기기 때문이다.


나를 커피에 입문시켰던 그 친구는 항상 로모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친구에게 로모가 뭐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100% 수동 필름 카메라여서 손맛이 있다, 필름 느낌이 좋다, 로모의 베네팅 효과가 좋다. 이런 이야길 했던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로모로 사진을 찍으면 찍힌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을 알 수 있어서 좋아. 그래서 누군가에 대한 마음을 모르겠을 때 로모로 몰래 사진을 찍어 인화해 보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을 확실히 알 수 있어."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로모로 사진을 찍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로모는 100% 수동이다. 자동으로 해주는 일이란 셔터를 눌렀을 때 렌즈에 담긴 장면을 필름에 넣어주는 정도일까. 필름을 넣는 과정도 조심스럽고 필름이 잘 감길 수 있게 신경써야 무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사진을 한 장 찍을 때마다 필름을 감아야 한다. 자동 초점 기능도 없어서 찍을 대상과 나의 위치를 감으로 측정하고 거리 조절 레버로 조절한 후 찍어야 한다.

아무튼 사진 한 장을 얻으려면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물건이다. 그러므로 내가 필름을 감고 거리에 맞춰 움직이고 프레임 속에 넣을 그림을 만들어서 한 장면을 찍으려면 마음이 완벽하게 움직여야 한다.

특히나 찍는 대상이 사람일 때 어떤 장면에서 내 마음이 동했는지 알수 있다. 어떤 시선과 어떤 마음으로 찍었는지에 따라 다가 오는 느낌이 다르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사진에 담길 수밖에 없다.


처음 로모를 사고 첫 롤을 끼웠을 때 어떤 작가의 말대로 연습 겸 나의 출근길을 찍었다. 출근 시간은 두 배가 걸렸지만 매일 보던 익숙한 장면이 필름에 담겼을 때 생경했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때 생각이 나서 최근 출근길을 찍어봤다.

최근에 다시 찍어본 이른 출근길 by 김쓴

필름 카메라는 특징상 내가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 특히 감으로 거리를 예상해서 찍는 경우 초점이 안 맞는 경우가 많다. 근접 촬영은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꾸준히 시도해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얻은 사진도 꽤 멋지다.

근접 촬영은 늘 모험적이다. by 김쓴

최근 알게 된 소식인데 최소 초점을 0.5m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조만간에 수리점에 가봐야겠다. 그렇게 되면 셀카도 가능하다.


나는 친구에게 필름 끼우는 방법, 기본 사용 방법을 배웠다. 그러나 사진을 다 찍고 나서 필름을 되감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카메라 바닥에 있는 '되감기 버튼'을 누른 후 되감기 레버로 감아야 하는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감다가 '되감기 크랭크'를 망가뜨렸다.

로모를 수리해주는 가게가 있다고 해서 남대문에 수리를 맡기러 갔었다. 그 장인은 흔한 일이라며 금속 재질로 새로 만들어주었다. 잊지 말고 시계 방향으로 감으라며 감는 방향을 빨간색 염료로 표시해주었다. 어찌나 튼튼한지 그 이후로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수리한  되감기 크랭크 by 김쓴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는 시작점을 순전히 나의 감으로 정하기 때문에 가끔 부분적으로 열화된 사진을 받게 된다. 첫 사진이 되기도 하고 마지막 사진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얻게 되는 보너스 판 같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나중에는 잘림의 묘미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잘린 사진만 모아 놓기도 하더라.


어느 날 사진을 다 찍고 인화했는데 빈 필름이 나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필름 문제인지 알고 새로 찍어서 인화를 맡겼다. 역시나 빈 필름이 인화되었다. 카메라가 고장 난 건 줄 알고 이유를 찾아봤더니 그냥 배터리가 다된 것이었다. 어떤 물건을 사면 설명서를 숙지하지 않고 그냥 써보는 편이어서 뷰파인더 왼쪽 램프가 점등되는 의미를 몰라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필름 2통을 날려 먹고 설명서 정독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불편함이 많은 로모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로모를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을 찍었는지 잊어버릴 때쯤 현상을 맡기고 무엇이 담겼을지 궁금해하는 시간, 디지털 사진기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실수 덕분에 지금은 그럴싸한 사진을 얻는 확률이 높아졌지만 흔들리면 흔들린 대로 망치면 망친 대로 로모로 찍은 사진이 좋다. 내가 로모에게 기대하는 바는 쨍한 사진이 아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분주했나 보네.', '이 사진을 찍으려고 오래 서 있었지.', '우연히 내 프레임에 들어왔었어.', '이건 왜 찍었는지 모르겠군' 등. 로모는 어떤 날의 내가 있던 풍경, 감상을 기록하는 저장 장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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