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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Mar 11. 2019

떠나서 알게 된 삶의 방식

꽃보다 할배 예능에서 배낭여행을 혼자 온 어린 친구에게 신구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있다.

난 대단하다 싶었어요.
나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요즘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용기도 있고 대담하다 그런 생각을 해요.


살면서 늦게 시작해서 후회하는 게 있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해외여행이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늦은 나이에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볼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가기 전 나는 해외에 나가면 막연히 국제 미아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그러다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첫 해외 여행지는 홍콩이었는데 첫 해외 여행지로 꼽히기도 하고 가깝고 문화도 크게 이질적이지 않아서였다. 첫 해외여행은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국외선을 타기 위해 출국심사를 하는 과정도 새로웠고 홍콩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를 하는 것도 새로웠다. 공항을 나왔을 때 맡아지던 달랐던 공기와 2층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을 때 화려한 건물과 낡은 지역에 빼곡한 공간도 새롭고 신기했다. TV에서만 보던 멋진 야경과 싸고 맛있는 음식들도 좋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는 많은 상점과 우리나라와 버금가는 러시아워 시간에 여러 방향으로 질서 있게 걸어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같은 지구 위에 살고 있지만 다른 대륙에서는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첫 여행 후로 아시아 지역을 여러 번 다니면서 해외여행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후 첫 유럽 여행으로 스페인을 갔다. 스페인 여행은 신기함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보다는 겉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허물고 다시 짓는 삶의 방식, 개인의 삶이 중요하니 주말이면 백화점을 닫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 무슨 기념일이면 주저 없이 상점을 닫고 축제를 즐기는 삶의 태도도는 한국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 큰 파장을 주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에 섰을 때 멈춰서는 차들, 가까운 공원에 사람들이 나와서 햇볕을 쐬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과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 그리고 밝은 표정들은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구 한 편의 내 삶은 바쁘고 정신없었는데 이 곳의 삶은 자신답게 충실히 사는 분위기, 여유가 당연한 듯했다. 누구의 눈치나 누구의 생각이 아니라 진짜 나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재작년에 인도네시아 발리로 친구와 서핑을 배우러 갔다. 예약한 택시가 오지 않아 곤란했고 자기 멋대로 짐을 옮겨놓고는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하필 러시아워 시간에 걸려서는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했다. 보도는 정비되지 않아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줄타기해야 했고 끝없이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없던 두통도 생길 판이었다.

하지만 서핑을 배우러 갔을 때 귀찮은 내색 없이 열심히 알려준 현지인, 오가며 만났던 현지인들은 친절했다. 귀찮을 정도로 호객 행위하는 기사들은 거절하면 그만이었고 약간의 웃돈을 얹어 비싸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도 흥정하면 그뿐이었다. 신호등이 없어 통제되지 않는 도로에서 서로 위험을 알릴 유일한 방법이 경적이어서 그들이 그렇게 경적을 울렸다는 것도 시간이 지나 이해하게 되었다.

현지인들은 편한 옷,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유명 메이커나 화려한 옷은 없었다. 그럴만한 게 그들은 여유 시간이 나면 바다에 뛰어 들어가 서핑을 하거나 바다를 산책했다. 그러다 보니 바닷물에 자주 젖어도 괜찮고 아무 곳에 벗어놔도 가져가지 않을 옷들이 당연해 보였다. 편한 옷,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게 당연한 분위기다 보니 나도 신경 쓰지 않고 길거리에서 산 옷과 슬리퍼를 신고 편히 다닐 수 있었다.


이따금 건물 사이로 지는 해를 볼 때면 발리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을 다른 누군가의 삶이 떠오른다. 각자의 삶의 고난은 다르게 존재하겠지만 여유 시간에 자유롭게 서핑하는 삶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비행은 늘 힘들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풍경은 '네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야. 다른 세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라고 말을 건넨다. 다양한 삶의 방식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 내 삶이 불만족스럽고 옳은 방향이 아니라면 다른 삶의 방식도 존재하니 생각해보라고 나를 흔들어 깨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여행을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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