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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Apr 28. 2019

오래된 친구가 좋은 친구인 이유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경계가 존재한다. C월드 일촌이 존재했고 F북에 제외할 친구가 존재하듯 가까운 사이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경계가 있고 먼 사람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경계가 있다.

나에게 누군가와 친한 관계가 된다는 건 신뢰를 기반으로 그 경계의 허용치를 늘려 간다는 의미이다. 어느 정도의 신뢰가 쌓이면 일정 경계 영역 안에 머물지만 얼마 되지 않은 사이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어떤 날 그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하지만 경계 밖으로 영원히 내몰리기도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오자히르’에서 발견한, 이 세상에 작동되고 있다는 호의 은행.
사람 사이에서 호의는 입금과 출금이 되는 일인데, 내가 해야 할 일은 남이 대신(아무리 가족이라도)하게 했다면 그것은 장부에 기재해두었다가 나중에 갚아야 하는 일이 된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호의를 계속 꺼내 쓰기만 한다면 언젠가 그 마이너스 통장은 부도 처리될 것이고 그 관계는 끝난다. 갑자기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차단당하고 쫓겨난 기분이 들 때가 있다면, 그건 상대에게 인색했던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내게서 호의를 출금만 해가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엄청나게 실망스러울 것 같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누군가를 내 경계 밖으로 완전히 내모는 경우는 나의 호의가 악의로 갚아질 때다.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면 살면서 좋은 사람들에게서 많은 호의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가급적 호의로 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의 호의를 권리처럼 생각하거나, 악의로 갚는 경우 그리고 나와 생각의 방향이 다름을 느낄 때, 나는 더 이상 그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게 서로를 위해서 여러모로 좋다. 관계에 있어서는 편식이 심해서 아니다 싶은 관계는 과감히 정리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남은 진짜 친구들은 대부분 오래되었다.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10개의 사탕이 있고 그걸 나눠줄 10명의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10개의 사탕을 어떻게 나눠 줄 것인가?


이런 대답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개씩 공평하게 나눠준다.

적절히 몇 명에게 나눠준다.

소수에게 많이 나눠준다.


질문에 답은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첫 번째 답이 맞다고 생각했었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알게 된 사실을 모든 사람이 내게 맞지 않으며 나쁜 영향을 주는 관계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에게는 쓸 수 있는 자원이 한정적인데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한정된 자원을 잘 써야 한다는 사실을 좋은 관계를 놓치고 배웠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자원을 쓰다 보면 정작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에게 소홀해진다. 그러면 나 역시 상대의 호의 은행에서 부도 처리될 수 있다.


작년 연말에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매년 연말이 되면 전화번호를 정리한다고 했다. 1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운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연말 전화번호를 지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남은 관계는 정말 소중하겠다 싶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는 주변 사람에게 잘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오래된 친구들을 생각하게 됐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에게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었다. 생일 때나 연말에는 꼭 봤지만...


내가 힘들 때 연락을 하면 기꺼이 만나자고 말할 친구가 몇 명일까.
또 나는 친구에게 그런 사람 일까.


이따금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간을 보내도 신뢰가 쌓인 관계는 유지될 테지만 그 친구가 힘들 때 기꺼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올해 초 나는 SNS를 접으며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사이가 되자는 글을 남겼다. 올해 남은 시간 만큼은 소원해진 관계를 다시 만나는 시간들로 채워졌으면 하고 바란다.



내겐 감사하게도 좋은 친구들이 있다. 누군가 나를 깎아내릴 때 자신이 아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 줄 수 있는, 가장 못났을 때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내 고민을 자신의 고민처럼 며칠을 같이 고민해 주는, 나이와 무관하게 동등하게 대해주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고 말해주는 친구들 말이다.

이런 좋은 친구들 덕분에 누군가에게 호의로 먼저 다가가는게 여전히 어렵지 않다. 만나면 행복하고 늘 따뜻한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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