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 시절은 IMF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대기업도 부도가 나는 상황이었으니 가정의 경제 상황은 당연 심각했다. 우리 가족은 한 달 벌어서 한 달 먹고살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저축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언니가 대학교에 입학해야 할 때였다. IMF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우리 집 경제 사정은 등록금을 낼 수 없을 만큼 좋지 않았다. 언니는 하는 수 없이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해야 했다. 한국 경제에 조금도 관심 없던 나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단번에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의 짐을 덜어 줄 방법은 빨리 취직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전문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빠르게 졸업하고 취직했다.
졸업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서 첫 번째로 합격한 작은 회사에 입사했다. 첫 출근 하던 날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똑바로 젓가락질해서 밥 먹으라며 호통치는 사장님 덕분에 일찍이 돈을 버는 일이란 참 치사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부조리함과 불합리한 것들을 날 것 그대로 경험하며 하루라도 빨리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환경의 회사에 다니려면 내 학위로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1년 뒤에 회사를 관두고 편입을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수습 기간에는 70% 주던 월급을 100% 받기 시작했을 때 바로 적금을 들었다. 당시 초년생을 위한 재테크 책 한 권을 사서 읽었는데 그 책에 "월급에 60%는 저축을 해야 한다."는 말을 믿고 따랐다.
그렇게 1년 지났을 때 내게는 800만원이 있었다.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1년 동안 용돈으로 쓰고 학원비를 내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퇴사를 했다.
은행에 있는 현금은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든다.
- 돈의 심리학
그리고 나는 내 모든 자산을 나에게 배팅했다. 나는 무조건 1년 뒤 대학생이 되어야 했다. 학비는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다. 자발적 고립 생활을 택했고 삶의 많은 부분을 간소화했다. 돈, 자신, 생활, 관계 모든 것에 최소한만 남았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편입을 해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대학교 2년 동안은 불합리함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내몰지 않아도 되는 유예기간이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인생에서 손꼽히는 행복한 시기였다.
이 경험은 내 의지로 선택하고 성공했던 첫 번째 경험이자 내 삶을 리셋하는 계기가 되었고 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많다.'와 '돈이 많다.'는 공존할 수 없는 명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내가 무언가를 자유롭게 할 '시간'을 벌려면 '돈'을 모아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퇴사하면서 이 생각을 더 확고하게 되었다. 두 번째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회사보다는 좀 큰 규모의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야근과 주말 출근, 약간의 여유 시간, 그 반복이 3년째 지속되고 있었다.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이런 삶이 모두 당연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이런 내가 답답했는지 운명이 나에게 제동을 걸었다. 친구와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자전거를 탔는데 비탈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뼈에 심하게 금이 갔다. 수술 이야기도 나왔지만, 다행히 몇 달 동안 깁스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쪽 다리 전체를 깁스해서 움직이기 어려워서 병가를 냈다. 2개월이 지났을 때쯤 회사가 너무 바쁘니 출근할 수 없겠냐고 했다. 출/퇴근이 쉽지 않은 나에게 택시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출근하니 팀장님 사비로 몇 번 지원한다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눈치가 보여 결국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깁스하고 출근을 하고 야근을 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하던 회사의 진실은 마주 했을 때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두 번째 퇴사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무엇을 할지 딱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1년 동안 먹고 놀 자금은 충분했으며 건강이 나빠졌다는 핑계도 있었다.
두 번째 회사를 관두고 자유의 몸으로 맞았던 가을을 또렷이 기억한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어색했던 그 날. 집 앞 버스 정류장에 앉아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낙엽들을 한참을 바라봤다. 너무 오랫동안 단풍이 이런 색이었다는 걸 가을 날씨가 이렇다는 걸 잊고 살았다는 걸 알았다.
수십년 인생에서 1년은 작은 점에 지나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이다.
퇴사를 하고 1년 동안 원하는 공부를 하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숨 고르기를 했다. 이 1년은 나의 두 번째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때 다른 공부를 하면서 직군을 바뀌게 되었고 차근히 준비해서 회사를 옮기고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힘들었던 시간은 나에게 어떤 행동이든 하라고 부추겼고 그 덕분에 나는 인생에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결핍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 시대는 경제적 자립을 강요했고 불합리함은 나를 움직이게 했으며 선택은 내 인생을 책임지는 법을 배우게 했다. 고립된 시간을 통과하면서 독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진짜와 가짜 관계를 구분할 수 있는 판단을 가지게 했다.
나는 여전히 월급의 60% 이상을 저축한다. 미래에 내가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돈 때문에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서,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돈 걱정 없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고 싶어서.
그래서 나에게 저축하는 일은 미래의 몇 년을 저축하는 일과 같은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