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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쓴 May 13. 2019

좋은 잠자리의 구성 요소

처음 내 방을 갖게 됐을 때 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침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침대 머리를 북쪽이나 서쪽에 두는 게 좋지 않다고 해서 동쪽에 늘 침대를 두었다. (불행히도 내 방은 늘 서향이었다.) 첫 침대의 소재는 메모리폼이었다. 당시 취향이랄 게 없어서 엄마가 구입해준 침대 커버, 이불을 사용했다. 아무리 두터운 이불을 깐다고 해도 딱딱할 수밖에 없는 바닥 생활을 하다가 푹신한 침대를 갖게 됐을 때 잠자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여느 날처럼 잠을 잤는데 유난히 불편했다. 예전만큼 푹신하지도 편하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메모리폼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고 유난히 자주 걸터앉았던 곳이 내려앉은걸 발견했다. 서서히 낡아갔을 테지만 그전에는 느끼지 못했다가 유난히 피곤했던 그 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침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고 알아봤다. 메모리폼, 스프링, 라텍스, 템퍼 등등 침대의 소재는 다양했고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걸 살까 고민하다가 라텍스 침대를 40만 원에 구입했다. 낡은 메모리폼 침대를 버리고 내가 고른 내 취향의 침대를 샀을 때 푹신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왠지 모르게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당시의 내게 고가이면서 지극히 사적인 물건을 누구의 취향이 아닌 온전히 나의 취향으로 샀을 때라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침대를 라텍스로 바꾸고 꽤 만족해서 베개도 라텍스를 사용했는데 이상하게 자고 나면 어깨가 너무 결렸다. 안 되겠다 싶어 좋은 베개를 찾아보다가 템퍼 소재의 베개를 샀다. 높이도 적절했고 그 후로 어깨도 아프지 않았다. 사용한 지 몇 년 됐는데 여전히 매우 만족스럽다.

그렇게 침대와 베개를 바꿨을 때쯤 일본으로 놀러 갔다가 무인양품에서 슈퍼싱글 침구 세트를 발견하고 싼 가격에 두 개를 사서 캐리어에 욱여넣어 들고 왔었다. 그리고 여적 잘 쓰고 있다. 지금은 판매하지 않는 것 같은데 침대 커버, 이불 커버, 베개 커버 3개를 포함한 세트로 6만 원 정도였다. 데님 색상에 줄무늬, 연한 베이지에 체크무늬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소재가 착 감기는 면소재라서 포근하다. 이불 커버 안쪽에 이불을 묶을 수 있는 끈이 있어서 편하고 침대커버 고무 밴드도 단단해서 잘 고정된다. 베개 커버엔 지퍼가 없이 한쪽 면이 뚫려 있는데 한쪽 면이 안쪽에 접혀있어 거기에 베개를 넣으면 빠지지 않는다.

침구에 무척 만족한 후 편한 잠을 위해 잠옷을 샀는데 소재나 디자인에 만족해서 계절별로 하나둘 사모으다 보니 벌써 4벌이나 갖게 되었다. 여름 소재는 짧고 얇아서 좋고 겨울 소재는 도톰하고 길어서 따뜻하니 좋다. 게다가 단추 되어 있어서 디자인도 귀엽고 안에 반팔티를 입고 걸치기에도 좋다. 봉재 선도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크게 없어서 편하다. 잠과 관련된 물건은 사는 것마다 마음에 들어서 회색 토퍼, 연갈색 타월 같은 여름용 이불도 구입했고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지난겨울 추위에 못 견뎌 온수매트를 구입했다. 전에는 전기 매트를 사용했는데 아무래도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고민하다가 큰 마음먹고 온수매트를 구입했다. 처음 온수매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물이 가득 찬 매트를 생각했는데 구매하고 보니 무척 얇은 매트였다. 얇은 매트에 얇은 수도관이 지나가는 형태라 과연 따뜻할까 싶었다. 하지만 웬걸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겨울, 봄에 잘 써먹었다. 감기에 안 걸리게 한 일등 공신이 아닐지.


어떤 책에서 햇볕을 받으며 깨면 쉽게 깰 수 있다고 해서 커튼을 약간 열어두고 잠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너무 캄캄한 방은 무섭다. 어쩌다가 이른 아침잠에 깼을 때 커튼이 열린 창문으로 먼동에 터오는 하늘빛을 보며 아직 새벽이구나 알아챌 때 아직 아침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받는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잠들기 전 벽에 기대 책 한쪽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고 잠들 때 행복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익숙한 잠옷을 입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에 빠질 때 그렇게 행복하다. 어느 곳이든 잠자리가 내게 중요한 이유가 어쩌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드는 그 순간이 늘 소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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