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쓴 Mar 04. 2019

독서가 취미가 되기까지

책에는 흥미가 없던 나는 23살 3월을 한 책을 만나면서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되었다. 고립된 생활을 해야 했던  외로운 시절 책을 만나 위로 얻었고 더불어 좋은 인생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삶의 8할은 책이 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나를 독서인으로 만든 책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공부하러 다녔던 독서실 옆에 작은 도서관에 산책 겸 놀러 갔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문학 2 교과서에 실렸던 그 ‘무소유'가 대표작인 에세이 책이었다. 


무소유 단어에서 풍겨오는 의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것 같았지만 실제 내용은 약간 달랐다. 무소유 제목의 글 내용을 짧게 정리하면 이랬다.  


법정 스님은 어떤 스님에게 난초 두 분을 받아 정성스럽게 길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있어 난초를 뜰에 내어놓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기 좋아져서 햇볕이 쏟아졌고 그 난초가 염려되어 집으로 되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난초는 햇볕에 약하다고 한다.) 그 순간 집착이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난초를 다른 이에게 주면서 해방감을 느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인간의 역사는 소유사처럼 느껴진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물건만으로 성에 차지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는 끔찍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 <무소유> 법정스님


이 책을 읽게 되던 시기는 내 주변 관계가 상황 반 타의 반으로 정리되던 때였다. 배신감으로 몹시 괴로워했다. 그때 법정 스님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람 마음은 각자의 것이라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는 건 마음을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이어가려고 했던 관계를 정리하면서 나는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 의지와 다르게 소원해지는 관계도 생긴다는 사실을. 사람 마음만큼은 내가 어쩔 수 없다는 것도. 

그 후로 관계에 대한 욕심내지 않게 되었고 잘 지내던 관계가 어떤 이유로 소원해 지거나 영영 멀어지게 될 때 잘 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무소유를 시작으로 독서에 취미를 붙이고 나서 내 인생에서 큰 영향력을 준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파일럿 피쉬'라는 책이다. 이 책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서점에 갔던 날, 소설 가판대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진열된 책을 구경했는데 내 시선을 끄는 책이었다.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고 투명한 종이가 덧대어 있었다. 제목으로는 도무지 내용을 추측할 수 없는 소설책이었다. 하지만 첫 장을 읽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사람은, 한번 만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 사람에게는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고, 좋든 싫든 그에 대한 기억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 어딘가에는 그 모든 기억을 저장해 놓는 거대한 호수 같은 장소가 있어서, 그 바닥에는 잊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수한 과거가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눈을 뜬 아침, 아주 먼 옛날 잊어버렸던 기억이 그 호수의 바닥에서 불현듯 둥실 떠오르는 때가 있다.
- <파일럿피쉬> 오사키 요시오


가볍게 보면 이 책은 연애 소설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무소유와 마찬가지로 사람 관계에 대해 방황하던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은 '방향치군'이라고 불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결정하지 못하는 유약한 존재였다. 우울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연인을 만나면서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연인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인연이 끝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둘은 재회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헤어졌지만 그 후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은 나에게 두 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첫 번째는 누구나 상처 주는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늘 상처를 받는 입장에 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다. 나도 얼마든 상처를 주는 입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 상처를 받아 마음 상할 때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속상한 마음을 약간은 누그러뜨릴 수 있다.

두 번째는 사람에게서 받은 영향은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관계를 맺는 일은 중요하고 신중한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경험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어릴 적에는 그 사실을 쉽게 간과했고 나쁜 영향을 주는 관계임에도 그 관계를 끊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법정 스님은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라고 말하셨고 나도 사람 인연은 유한하다고 믿는 편이라 인연이 유지되는 동안 만큼은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 헤어지고 나서 서로의 나머지 삶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살면서 무수한 힘든 시기들은 파도처럼 다가왔다 빠져나간다. 그런 시기를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를 때, 우리는 이미 같은 고민을 했을 인생 선배를 찾아간다. 하지만 주변의 인생 선배가 없던 시절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인생 선배는 어느 분야든 성공했을 한 사람이 쓴 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이 있거나 결단을 해야 할 때 책을 많이 읽는다. 독서를 하다 보면 구체적이지 않았던 고민의 실체를 보기도 하고 답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전 08화 커피를 내리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