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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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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Dec 13. 2018

# 개, 인슐린 주사를 맞다

T세포: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당뇨병이 걸린 개를 처음 본 건 수의사가 되기 전 아직 대학생이었던 때였다. 임상 관련 과목을 배우기 전이었고, 우리 집에서 키운 개는 여러 차례 말했듯 당뇨병에 걸릴 만큼 오래 살지 못했다.


학생일 때 선배 수의사 분께서 운영하시던 동물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24시간 동물병원에서 야간에 청소 및 카운터 일을 돕고 수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수의사가 되기 전 학생 입장에서 동물병원의 현실과 임상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느 날 입원실에는 딱 봐도 삶이 길지 않아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푸석한 털과 수척하단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는 깡마른 몸. 오랫동안 쳐다보기도, 말을 걸기도 미안한 모습이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심한 당뇨병에 걸린 아이라고 하셨다. 1주일에 두 번 가는 아르바이트였는데 며칠 후인 그다음 방문 때 그 개는 보이지 않았다. 짧은 만남으로 스쳐갔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개가 당뇨병으로 얼마나 괴로워질 수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게 되었다.


개에서 당뇨병은 꽤나 흔한 질병이다. 다행인 것은 조기에 발견하면 인슐린 주사를 통해 질병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합성한 사람 인슐린 (재조합 단백질)이나 돼지 인슐린 (개의 인슐린과 단백질 종류가 완벽히 일치하고 '돼지'라는 특성상 인슐린을 얻기 쉬운 이점이 있다)을 주사함으로써 혈당을 조절한다.


사람은 당뇨병에 걸렸다고 무조건 인슐린 주사를 맞지는 않는다. 운동과 식단관리를 통해 당뇨병을 관리하는 환자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 해서, 당뇨병에 걸린 개를 운동과 식단 조절로 관리하려고 하면 안 된다. 개의 당뇨병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세포가 파괴되어서 혈당을 낮춰주는 인슐린의 분비량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에서는 이러한 당뇨를 제1형 당뇨 또는 소아 당뇨라고 부르는데,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과거에는 유전적 원인으로만 알려졌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제1형 당뇨를 자가면역성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개의 당뇨병은 설탕과 관련이 없다

흥미롭게도 개의 당뇨병은 사람의 제1형 당뇨와 유사하다. 그래서 개의 비만과 당뇨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와 달리 고양이의 당뇨는 비만과 관련이 있고 사람의 제2형 당뇨와 유사하다고 수의학계에서 여겨지고 있다.


개의 당뇨가 자가면역성 질환이라는 증거는 당뇨병이 걸린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발견되는 것과 인슐린에 대한 자가 항체가 검출되는 것을 들 수가 있다. 하지만 정확한 발병원인과 자가면역 기전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이것은 사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제1형 당뇨가 많이 생기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 몸에 있는 췌장 세포를 이물질로 인식해 면역세포가 공격한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얼마 전 기사를 통해 1형 당뇨를 앓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아팠다. 친구들이 놀리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관리를 해주지 않아서 그 어린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몰래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다니. 병의 무서움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보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개봉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이 떠올랐다. 청춘 소설이 원작이라는데 제목이 왜 그럴까. 작가의 심오한 문학적 은유가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자기 췌장을 공격하는 면역세포가 떠오르며 더욱 섬뜩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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