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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Nov 26. 2018

외국 여행 갈 땐 현지어를 준비해야 하는걸

2012년 학회 참석차 브라질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의 일이다. 원체 여행이란 것을 인생의 우선순위에 존재하지 않았던 나이기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 나라에서만 30년을 살아온 내가 남미를 가게 될 일이 있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지금은 브라질 경제가 안 좋아진 것 같은데, 2012년 즈음은 중국과 함께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5개 국가 내에 브라질이 들었던 때로 기억한다. 경제성장률 8%대에 육박하며 경제 호황을 누리던 시기이다.


브라질은 은근히 수의학에 관심이 많은 나라이다. 개의 유선 종양에 대해 연구하며 논문을 찾아볼 때 브라질 소재의 수의학과에서 꽤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음을 알고 적잖이 놀랐었다. 그 이후로도 꾸준한 연구 덕에 지금도 개의 유선 종양 분야의 진단과 연구에 많은 브라질 수의학 연구자들이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그 당시, 브라질 수의학과 교수 및 연구자들이 비교 종양학 (Comparative Oncology)에 대한 특별 컨퍼런스 세션을 열었다. São Paulo Advanced School of Comparative Oncology (ESPCA)라는 이름의 1주일짜리 교육 컨퍼런스였는데 전 세계 수의 종양학 분야의 유명한 연구자들을 초청 연자 (Invited Speaker)로 초대해 강의를 하였다. 브라질 수의학 분야의 대학원 학생들이 주로 참여하고, 그 외 해외에서 연구를 하는 학생 및 포스닥 등을 초청하였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모든 재정을 회사에서 지원하여 스폰을 한 것인데, 덕분에 나도 왕복 비행기 표와 1주일 동안의 모든 체류 비용을 일면식도 없는 브라질 회사로부터 지원받아서 브라질이란 나라를 경험하게 되었다.

공항에서 처음으로 본 상파울로는 이러한 모습이었다

수의 종양학에 대한 연구 내용에 대한 것은 뒤로 하고, 미국에 1년을 살았다는 건 어느 정도 기본적인 미국 생활에는 적응을 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영어로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랬기에 '생존 영어'라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브라질에서 열리는 학회이긴 하지만, 연구자들이 모인 자리이라 대부분 영어를 쓰리라 생각을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브라질어 (포르투갈어)에 대한 단 한 단어도, 단 한마디도 준비해 가지 않았다.


공항에 갔을 땐 안내 센터의 직원이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했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학회 봉사자들 또한 영어로 우리를 인솔해 버스를 태웠다. 그리곤 상파울로 공항으로부터 3시간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였다. 도착한 호텔은 작은 도시에 위치한 매우 아름다운 호텔이었다. Águas de São Pedro 라는 도시 어딘가의 외딴 호텔이었다. 밖에 나가서 마땅히 즐길 것도 없는 아주 작은 타운이었고, 호텔 내에서 학회 외에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그곳에서 1주일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브라질의 이색적인 아름다운 경험하기에 충분했다. 호텔 건물 외부와 내부, 객실 모두 고급스럽고 깨끗하고 세련된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가격도 비쌌다. 우리를 호텔에 가두어 (?) 두고 1주일 간 삼시 세 끼를 모두 뷔페로 풀서비스로 제공하는데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바로 이 호텔이었다. http://www.grandehotelsenac.com.br/br/sao-pedro

이미지출처: https://www.ajanelalaranja.com/2014/02/grande-hotel-sao-pedro-com-crianca.html
이미지출처: http://afinalturismo.blogspot.com/2016/02/grande-hotel-sao-pedro-hotel-escola.html

단 한 가지, 언어소통의 문제만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당황스럽게도 호텔의 직원이 영어를 못했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상파울로 도심도 아니고 그곳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작은 도시에서 직원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 이해는 가는 일이었지만, 한국어도 안되고 그나마 영어도 안되니 도저히 소통이 불가하였다. 어찌나 무식했던지 나는 심지어 물도 포르투갈어로 몰랐어서 처음엔 그나마 영어로 소통이 되는 커피를 달라고 하였다. 나중에 물이 '아구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직까지 기억하는 포르투갈어가 되었다. 부끄럽긴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 당황스러움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자들에게 더 컸다는 것이다. 학회에서 만나 친하게 된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캐나다 사람들이 있었는데, 일본계 캐나다인, 그리스계 캐나다인이었다. 나는 모국을 떠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 100% 이해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언어불통의 속을 뼈저리게 경험하던 터라, 언어가 잘 안 통한다는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어는 전 세계 어디에나 사용되고 영어권 나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언어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그리 크진 않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그들에게 단 한마디의 영어도 통하지 않는다는 일은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테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고충을 토로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담으로, 스페인어는 미국에 가까운 멕시코도 있고 해서 비교적 많이 들어본 언어에 속한다. 그에 비해 포르투갈어는 실제로 처음 경험하는 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어보다 포르투갈어가 훨씬 매력적으로 들렸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서로 60% 정도는 알아듣는다고 할 정도로 유사한 계열이라는데, 뭐랄까. 스페인어에 된소리가 많은 것과 달리 포르투갈어는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못 알아듣는 거야 피차일반이지만 내 귀에 들리는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기회가 되면 배워보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있을까.


짧은 기간이었지만 브라질을 경험하며 포르투갈어가 통하지 않는 답답함 속에 깊이 반성하며 느낀 것은, 현지에 가면 기본적인 현지어를 조금은 준비해 가야 하고, 조금이나마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구글 번역기가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때 함께 했던 또 다른 사람은 우리 연구실에서 함께 일했던 일본인이었는데, 그 친구는 여행을 위한 포르투갈어를 간략하게나마 프린트해서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그도 이렇게 말이 안 통할 줄은 몰랐나 보다. 자기네 일본 사람들도 영어를 잘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 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영어 단어들은 안다는 것이다. 한국도 비슷하다며 동조하긴 했지만, 그때 내가 느낀 점은 (보통) 브라질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는 데에 대한 아쉬움보다, 내가 외국 현지를 방문하면서 그 나라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훨씬 컸다. 브라질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브라질 사람이 영어나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내가 좀 더 편하다면 그것은 내가 그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영어를 안 쓰는 나라의 사람들이 영어를 못 쓴다고 비난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특히 더 젊은 세대들은 영어를 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만,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영어를 안 써도 한 나라를 이루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다. 한국 내에서도 자꾸 영어를 써줘 버릇하니깐 외국인들도 한국 와서 영어로만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물론 요즘은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이 많다는 사실이 고무적이기도 하다). 국제화 시대에 사회발전을 위해 애써온 대한민국의 노력을 모두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어를 못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와 같이 외국에 어느 곳을 가든 그 사람들이 영어를 못 하는 건 그 사람들 잘못이 결코 아니다. 다른 나라에 가면서 그곳의 언어를 조금이라도 준비하지 않은 여행자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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