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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Oct 31. 2019

선진문물에 물든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호랑이 힘이 솟아나요!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유복한 집에 자라진 않았지만, 유년 시절을 상기할 때 대부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본이야 워낙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나라고,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잔재와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만화, 게임 등으로 8-90년대의 문화가 채워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머나먼 땅이지만 이만큼 우리나라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라가 또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직계가족, 먼 친척 포함해서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미국에서 살거나 경험한 친인척이 전혀 없다. 미국에 와서 나 홀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은, 어릴 적 즐겨 먹었던 과자들이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과자를 만드는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없었기에 선진국의 것들을 수입하고 베껴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야 성인으로서 이해할 수 있긴 하지만, 뭔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속임을 당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릴 적 엄마 품에 안겨 먹었던 계란 과자.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선 시각적 만족도 주었던 동물원.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으며 즐겼던 고래밥. 뚜껑을 뜯으면 반으로 나뉜 공간에 따로 담긴 퍽퍽한 스틱 과자를 초콜릿에 찍어먹는 재미. 초콜릿이 부족해 과자만 먹으며 아쉬워했던 기억. 치토스 안에 든 "한 봉지 더" 딱지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 그리고 따조. 그 외에도 수많은 CF들.


호랑이 힘이 솟아나요! 콘푸로스트

난 반했어요 초코렛 맛 네스퀵!


이 모든 것이 미국에서 죄다 베껴서 가지고 들어온 것이었다니. 동네 슈퍼마켓에서 한글로 쓰여 있는 과자봉투를 손에 쥐며 쌓았던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이 우리의 생산물이 아니라, 단지 외국을 먼저 경험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침투당한 것이라니.


물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은 자체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이제는 한국 실정과 입맛에 맞는 더 뛰어난 생산물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러한 순기능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제는 어릴 적 즐기던 외래 (?) 과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뒤로하면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이 훼손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미국에서 마트를 갈 때마다 30년의 과거로 돌아가 유년 시절의 감상에 젖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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