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잇독 Oct 31. 2019

색깔 바뀜

자연의 변화를 임의로 조종하다 

가을은 색깔을 바꾼다. 

온도와 햇빛의 농도, 노출시간에 따라 나뭇잎은 각기 다른 색을 입는다. 

나무들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활동이다. 

단풍은 이내 바닥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치워지는 애물단지가 된다.

벌거벗은 나무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랜 동면의 시간을 보낸다. 

추위에서 생존하기 위해 털을 뒤덮는 동물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나무는 그저 자연의 섭리를 묵묵히 따른다. 

생존을 위한 방법일 뿐이다. 


짧지만 강렬한 색깔의 변화는 우리에게 감성의 변화를 가져온다.

나무는 그럴 의도도 없고, 관심도 없다. 

바라보는 자의 일방적 관점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은 눈으로부터 카메라로 옮겨질 때 그 본질을 잃는다.

카메라의 설정을 바꾸면 자연 모습 그대로는 사라지고 이질적인 모습이 담긴다. 

그것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왜곡된다. 

왜곡이 항상 나쁜 쪽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연의 섭리와는 상관없는 기계적 조작에 의한 아름다움이 재창조된다. 

해와 달의 뜨고 짐, 습기의 정도, 온도의 뜨거움과 차가움, 바람의 양이 적절히 어우러져 오랜 시간 생물학적 반응으로 만들어낸 색깔의 변화는, 1부터 10을 가리키는 카메라의 빛의 노출, 대비, 채도의 변화를 조작하는 기술에 따라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인간의 기술로 빚어낸 전혀 새로운 창조의 산물이다. 

그것이 자아내는 감성의 변화 또한 어쩌면 심리 조작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2000년생이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