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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13. 2018

# 동물사랑은 인간 혐오와 연결되는가

동물을 학대하는 자에 대한 분노와 그것에 대항하는 분노

어릴 적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를 포함한 자연과 동물이 나오는 티비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티비 '브라운관'에서 동물이 등장하는 방송은, 'TV 동물농장’과 같이 감성 위주의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모습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나 교육 목적이 주를 이루었다. 대부분은 BBC와 같은 외국에서 제작된 영상물이었다. 다큐멘터리들은 많은 자본과 시간, 노력을 들여 멋진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케냐와 탄자니아를 배경으로 한 사바나 동물의 왕국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경이로움과 미지의 세계였다.


하지만 동물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만이 담길 때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개입하는 장면에선 희극이 비극으로 뒤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류의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인간이 자연과 동물을 어떻게 학대했고 어떤 동물을 멸종시켰는지를 고발한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동물을 '어떻게' 고통 가운데로 몰아넣으며 살육하는지에 대한 다채로운 묘사는, ‘왜’라는 질문 앞에 언제나 '돈 때문'이라고 고리타분하게 대답한다. 그러한 고발을 통해 시청자는 같은 종(species)인 인간 호모 사이엔스에게 분노한다.


한국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인간 혐오가 존재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동물이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옆집과 앞집, 뒷집, 윗집, 아랫집 등 나의 생활 영역 가운데로 거침없이 침입했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나면서 발생한 매너와 에티켓의 문제, 비 반려인에 대한 배려 없는 행동들로 인하여, 반려인들에 대한 인간 혐오가 생긴다. 요즘같이 사회 전반적으로 갈등이 발생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유독 반려동물 문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다만, 동물을 학대하고 살생하는 무자비한 인간에 대해 보였던 인간 혐오의 모습이, 오히려 반대로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일어난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마크 베코프는 그의 책 <동물 권리 선언>을 통해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으며 온정으로 동물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한 인간의 심성을 가지고 동물에게 온정의 발자국을 넓혀가자는 입장은, 같은 종 호모 사피엔스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 않으면 동물 보호 운동의 효과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는 전략적 판단일지도 모른다. 인간 혐오를 드러내며 같은 종을 적으로 삼는 것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저자의 심성이 '보통 인간'보다 비교적 더 선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고 느낀다. 그가 모든 동물을 사랑하듯, 인간이란 동물에 대해서도 온정으로 대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생애를 바쳐 동물을 사랑하고 권리를 위해 힘쓰는 원동력에 인간에 대한 분노가 전연 없으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인간이 자행해온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동물 학대와 폭력을 바라보며 오른뺨을 때린 자에게 왼뺨도 대어주는 사랑의 모습을 기대하긴 무척이나 어렵다.  


그 감춰진 속내가 드러내서일까. 아니면 단지 동물 학대에 찬성하는 부류들이 본질적으로 더 악하기 때문일까. 열성적인 동물 보호 운동가들을 보며 그와 반대의 의견을 가지거나 동물 따위에 관심이 없는 인간도 마찬가지로 인간 혐오를 경험할 수 있다.


인류는 조금만 서로의 의견이 다르면 힘과 권력을 이용해 같은 종을 죽이는 것을 서슴없이 자행해 왔다. 역사의 대부분은 그렇게 전쟁과 약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현대 인류는 유례없는 평화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와 인간의 손으로 이뤄낸 문명으로 발생하는 사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이전에 당당히 이뤄지던 살육의 현장이 '비교적'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의견이 다르거나 이익이 상충하게 되면 힘 있는 자가 상대의 생명을 빼앗는 일들이 감소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현상이고 그런 시대에 태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혐오하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를 이루며 나 이외의 타인과 부대끼며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세상을 살아갈수록 더 깊이 경험한다.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는 그 자체가 왜 인간에게는 화가 나는 일일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것은 결국 그 다름으로 인해 나라는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주장과 행동들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 학대자들을 보며 경험하는 인간 혐오는 인간의 악한 폭력성에 대한 분노이고, 동물 보호론자들에 대한 인간 혐오는 위선과 이중잣대에 대한 분노가 아닐까. 이 두 가지는 모두 인간의 악한 마음과 행위에 대한 반감이다. 악함에 대한 거부감으로 생기는 분노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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