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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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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10. 2018

# 개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개는 당신이 무섭다

'개 때문에'라는 말은 나에게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곧 그 반대의 현상을 발견한다.

개 때문에 무서워 죽겠어요
개 때문에 알레르기로 응급실 갔어요
개 냄새 때문에
개 털 때문에
개 똥 때문에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목줄 안 한 개  때문에
.
.
.

반려견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그와 비례해 개 공포증 (도그 포비아, dog phobia)을 호소하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필자도 어려서부터 개를 좋아했고 많은 개를 키웠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중학생 때 하교하고 집에 가기 위해 타야 하는 버스가 30분마다 한 대밖에 없는 바람에, 버스를 한번 놓치면 30분 소요되는 거리를 그냥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며 기다리느니 경치를 구경하며 시골길을 걸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을 보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논 사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한 가지 소소한 행복에 방해가 되었던 것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가 너 다섯 마리 풀어져 있는 곳이 있었다는 것이다. 들개는 아니었고, 시골길 삼거리에 출몰(?)하는 마을 개들이었는데, 인적이 드물고 집도 몇 채 없는 곳이라 주인이 개들을 그냥 풀어놓은 듯했다.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개들이 마중 나와 항상 짖어대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골목대장처럼 나타나서는 자기네 영역으로 침범하지 말라며 마을 방위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이빨을 드러내며 짖는 모습은 분명 위협과 경고의 표시였다.


하지만, 광견병이 걸린 개가 아닌 '정상적인' 개들의 경우, 사람이 먼저 본인들에게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굳이 달려와서 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자리를 일부러 피하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마주치지 않으려면 한참을 더 돌아가야만 했다. 물론 지나갈 때마다 그 개들이 안 나타나길 속으로 열심히 빌었다.


그들이 나타났을 땐,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렸다간 험한 꼴을 당할 수 있기에,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개들을 쳐다보지 않은 채, 뛰지 않고 조심조심 지나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과자 등 간식거리를 사서 하나씩 던져 주며 분위기를 와해시키기는 것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긴장된 상태로 그렇게 지나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혹시나 녀석이 달려들면 어쩌지’

‘달려들면 재빨리 발로 걷어차야 되나’


별생각을 다하며 그 자리를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랐었다.


다행히도 그런 두려운 만남을 무수히 처했지만 '아직까지는’ 개에게 물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이 경험을 토대로 개에게 물리는 것은 그 사람, 곧 ‘물린 당사자의 잘못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개를 좋아하는 필자도 개를 무서워했다는 고백이고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재수 없이' 물리는 경우도 분명 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인한 행동의 부자연스러움으로 개에게 오해를 사 물릴 수 있다. 시골에서는 장난을 치거나 개를 위협하다가, 또는 단순히 무서워서 먼저 도망을 치다가 물리기도 한다.


시골 개와 다르게, 스트레스가 많고 주로 가족들과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아파트 환경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으로 반려견들이 사람을 물 수 있다. 이런 경우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철저히 반려견 주인 또는 보호자의 잘못이다.


오랫동안 반려견으로 키워지고 길들여진 품종의 개들은 브리더(breeder)들의 유전적 선택과 후천적 훈련을 통해, 공격성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아직 한국에서는 '순한' 개체들만 선별하는 전문 브리딩 문화가 아니고, 요즘은 많이 활발해졌다 하더라도 보호자와 반려견들에 대한 교육이 여전히 부족하다.


사람이 개를 무서워하기보단, 오히려 개가 사람을 무서워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간이 개에 대해 지금까지 행한 일을 볼 때, 개라는 종족 입장에선 인간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사람이 갖는 개 공포증 (dog phobia)보다 개가 사람에게 갖는 인간 공포증 (anthrophobia)이 훨씬 커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개는 그렇지 않다. 사람만 보면 좋다고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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