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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06. 2018

# 사진과 실재의 연결고리

적나라한 사진은 뇌 속의 기억을 눈 앞의 실재(實在)로 재현한다

개고기 사진이 불편한 이유는, 과거의 경험으로 저장된 기억 속의 희미한 이미지가 현실 세계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끔찍하고 잔인한 장면은 그 자체로 혐오스럽고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직접 관련된 사건일 경우는 단지 시각적 차원에서 유발되는 감정을 뛰어넘는다. 개고기 사진을 보는 나의 감정이 그러하다. 대부분의 경우 개고기 사진들은 개식용을 반대하는 입장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잔인함을 부각하는 용도로 대중에게 노출된다. 불편함을 야기하는 자극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방법론 자체를 전면 부인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의도적인 자극 유발이 반복되면, 대중은 그 반복된 노출로 인해 무뎌진 시각적 불편함과 내성을 바탕으로 본래의 의도를 불순하게 처리해 버림으로써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하는 것이 우려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특히 동물 복지와 보호를 주장하며 개식용을 반대하는 자들의 주도로 배포되는 개고기 사진들에서, 역설적으로 죽은 동물에 대한 존중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대중의 혐오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 차원의 푸념이다. 개고기 사진을 보는 것은 보통명사 누렁이가 아닌 고유명사 ‘누렁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개고기라고 검색하면 거무튀튀하게 그슬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통개’의 사체 사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의 반려견의 죽음이 동물 장례 절차를 거쳐 슬픔으로 정성스레 떠나보낸 것이 아닌, 개고기 사진 속의 모습으로 기억된다면, 그 사진을 보며 단순히 '보기에' 잔인하다는 감정만을 느끼겠는가? 과연 내 반려견은 혈통과 족보 있는 순종의 품종이고 사진 속 개는 식용으로 키워진 근본 없는 잡종 누렁이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목매달아 숨통을 끊고 불로 그슬린 다음 내장을 빼고 바닥에 던져 놓으면 황금빛 털을 가진 골든 리트리버나 오드아이(odd-eye)를 가진 시베리안 허스키나 시골 누렁이나 다 똑같을 뿐이다.


사진 속의 누렁이들, 털이 그슬려 갈색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원래 털 색깔은 어땠을지 모르는, 누렁이가 아닐 수도 있는 시체들의 사진을 보는 것이 불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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