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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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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ul 31. 2018

# 아저씨, 우리 개에요

1996년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우리 집엔 발바리가 한 마리 있었다. 품종은 알 수 없고 소형견 크기의 옛날 시골 개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전까지는 우리 집에서 발바리를 키운 적은 없다. ‘어떤’ 목적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또 어디선가 이웃으로부터 얻어 오셨다.

 

95년에 우리 집은 또다시 이사를 했다.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마을이 있었고 우리 집 주변엔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 주변은 논과 비닐하우스 농장이었다. 발바리도 보통은 개 줄에 묶여 있었다. 묶여 있는 모습이 항상 안쓰러웠기에 나는 종종 풀어주곤 했는데, 다행히 개를 풀어놓아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일은 없었다. 다만 바로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발바리가 들어가 농작물을 흩뜨려 놓기도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가급적이면 풀어놓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보통은 내가 집에 있을 때만 풀어놓고 놀아주곤 했다.


학교를 가거나 외출을 할 때면 집에서부터 차도가 있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나가 버스를 타야 했다. 그렇게 나갈 때면 발바리가 나를 따라 나오곤 했다. 하지만 차도까지 나오면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뿌리쳤다. 차도까지 나오는 길이 꽤나 길었기에 발바리는 중간 정도 나오다가 보통은 돌아가곤 했고 나를 따라 차도까지 나온 적은 없었다.

 



어느 날 학교를 갔다가 오후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에 내려서 버스가 다니는 큰길을 돌아 작은 차도로 들어섰다. 주변엔 비닐하우스가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왼쪽 아스팔트 길가에 시간이 좀 되어 보이는 혈흔이 낭자해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인가 로드킬을 당한 것이다.


나는 그저 호기심에 혈흔 근처에 다다랐고, 길가엔 우리 집 발바리가 피범벅이 된 채로 싸늘하게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충격에 그저 멍하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비닐하우스에서 일하시던 아저씨 한 분이 나에게 손짓하시며 말씀하셨다.


어이 학생. 더러워. 어서 그냥 가



나는 겨우 한 마디를 했다.


아저씨... 얘... 저희 집 개에요...



아저씨는 민망한 듯, 미안한 듯, 어린 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는 듯, 조용히 일하던 자리로 돌아가셨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얘가 여기까지 왜 나왔지.
나랑 있을 때는 한 번도 여기까지 나온 적이 없는데...
내가 괜히 얘를 풀어놓아서...

괜히 풀어놓아서...”


아버지께서 집 앞에 흐르는 개울 근처에 묻어주셨다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알려주셨다.

그렇게 또 짧은 만남이 끝났다.


예상치 못한 이별은 항상 충격이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내 안에 이별을 항상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골 개의 운명이 예상치 못하다는 것을 어렸음에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결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집착과 이별의 슬픔에 대한 솔직함 또는 과장은 나를 고통으로 이끈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그것을 내려놓는 연습을 무의식 중에 했는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감정이 ‘담담했다’라고 표현하기엔 떠난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잠잠하게 덮어버린 폭풍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적절하게 표현할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을 떠올리며 단지 내 감정에 침잠하는 것 또한 적절치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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