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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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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14. 2018

# 잔치와 손님

개고기는 한국의 식탁 문화였다

한국에서 개고기 문화는 잔인하고 악랄하며 비인도적이고 야만스러운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게 아니다. 하지만 개 사육, 개농장, 개 도살에 대한 글들을 보면 단순히 개를 가엾이 여기는 것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증오를 유발하게끔 한다. 개농장의 끔찍한 사육환경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개식용 현장에 대한 르포는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 생명 경시에 대한 무자비한 태도를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날에 담뱃값 하나로 개를 팔아버린 노인 및 개장수에 대한 묘사, 주사기와 약물 및 의료 도구들이 존재하지만 진료라고 부를 수 없는 불법 학대 행위, 좁은 철창 속에 갇혀 썩은 잔반을 먹고 서로를 물어뜯는 개들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서민들의 일상 중에 하나의 음식 문화로 깊숙이 자리 잡았던 개식용 문화는 이러한 개 사육장의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동네 아이들이 뛰놀고 평범한 일반 시민들이 나누는 담소와 잔치의 현장,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한 시골의 정이 피어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인간애가 넘치는 장면이다. 개식용을 반대하는 자들의 비난은 곧 정이 넘치는 아름다운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이기에, 개고기를 통해 즐거운 추억을 경험했던 자들에게는 반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부엌에서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어머니들과 마당에서 동네 친구들과 뛰노는 아이들에게 살육의 현장은 감춰져 있다. 친구들과 땅따먹기를 하며 보낸 잠깐의 시간 사이에 고작 몇 걸음 뒤에서 준비된 부드러운 고기만 있을 뿐이다. 도살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 시간은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뛰논 후 허기진 배와 가족과 이웃의 화목함을 채우는 일련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개 한 마리의 희생으로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몇 시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운 시골 풍경 아닌가. 이러한 모습은 도심 한가운데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며 즐기는 저녁의 모습과 닮아있다. 고깃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왁자지껄 떠들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 호프집에서 치맥을 나누며 친구와의 정을 이어나가는 인간다운 삶의 필수 요소이다. 이것이 개고기를 통해 내가 경험한 시골 동네의 “한끼 줍쇼”와 같은 풍경이다.


지구 반대편, 서구사회로부터 전달된 반려동물 문화는 이러한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결여되는 인간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애쓰기는커녕, 같은 언어를 쓰는 인간들과의 대화도 완전치 못한 주제에 외계인과 다를 바 없는 희한하게 생긴 생물체에 감정을 쏟아내며 같은 종에 대한 인간 혐오를 부추긴다. 아름다운 일상의 서민 문화를 무너뜨리고 깨버리는 것을 서슴지 않는 개식용 반대론자들의 무자비함이다. 지금은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한국 문화에 대한 추억의 파괴를 논하는 자들이 달가울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서술은 같은 인류로서 애써보는 그들의 입장에 대한 변호이다. 설령 그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개라는 한 생명체를 도살하며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동물을 둘러싸고 즐거워하는 무리들의 잔학함은, 야생에서 생존을 위해 톰슨가젤의 숨통을 끊는 치타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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