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연유인지 내 삶에 호수란 녀석이 훅 들어와 있었다. 문득 내 삶의 영역에 항상 호수가 가까이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나는 취하려고 노력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10대의 대부분은 일산에서 보냈다. 신도시란 말이 지금은 무색해진 그곳이 생겨날 때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 공원. 여전히 지역 주민뿐만이 아니라 타지에서 찾아올 만큼 사랑받는 일산 호수 공원엔 10대, 20대 초반의 많은 추억이 서려 있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쉼을 얻으러 가고, 졸업 사진을 찍기도 하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물론 당시에는 '아름다움'이란 표현에 공감하지 못했다. 원래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모르는 법.
군대를 포함해 장장 12년여 년의 기간을 보낸 대학 캠퍼스는 큰 호수로 유명했다. 호수를 품은 캠퍼스. 대학의 낭만과 어울릴 법한 표현이지만, 현실은 닿기만 해도 108가지의 피부병이 유발된다는 루머의 근원지. 그래도 삭막한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호수는 캠퍼스의 전경을 아름답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지금은 지도에서만 보던 5 대호 중에 하나인 슈피리어 호수를 끼고 10,000개의 호수를 보유한 땅에 살고 있다. 슈피리어 호숫가의 어느 작은 마을 그랜드 마리스라는 곳을 얼마 전 다녀왔다.
2015년 CNN에서 선정한 "Top 10 Coolest Small Towns in America"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이다.
1. Grand Marais, Minnesota (population: 1,351)
2. Chincoteague, Virginia (population: 2,941)
3. Hillsborough, North Carolina (population: 6,087)
4. Allegan, Michigan (population: 4,998)
5. Washington, North Carolina (population: 9,744)
6. Delhi, New York (population: 3,087)
7. Fort Myers Beach, Florida (population: 6,277)
8. Huron, Ohio (population: 7,149)
9. Snohomish, Washington (population: 9,098)
10. Old Orchard Beach, Maine (population: 8,624)
스몰 타운 중 가장 멋진 곳으로 선정된 것이겠지만, coolest를 가장 추운 곳으로 중의적 해석을 담아 뽑힌 건 아닐까. 왜냐하면 미네소타니깐. 5년 전 처음 방문하고 이번이 세 번째인데, 겨울 방문은 처음이다. 나는 아직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슈피리호의 North Shore를 두 시간여 달려 나타난 작은 휴양도시의 첫인상은 누군가 몰래 숨겨둔 보석 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 캐년 같은 유명 장소에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은 곳. 유명세는 없지만 실력이 훌륭하고 나의 감성을 채워줄 인디밴드를 발견하고 나만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하는 곳이다.
시각적으로는 바다만큼 넓지만, 후각적으론 짠내 곧 바다내음을 풍기진 않는 민물호가 넘쳐나는 이곳. 차갑고 투명한 호수를 품은 이 곳은 축복의 땅이다. 인류의 문명이 강에서 발생한 것처럼, 물이 많다는 것은 인간에게 그야말로 축복이다. 가끔 강추위에 몸서리를 치더라도 목이 말라 타들어가는 것보다는 낫다. 강추위가 가끔이 아니어도 나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