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삶이 한국과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점은 반려견 문화이다. 한국은 여전히 식용견과 반려견에 대한 구분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에도 당연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 정립된 사회적 합의가 있다. 한국에서는 한 개인이 아무리 개를 사랑하여 선진국 수준으로 반려견을 교육시키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동물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건강 관리를 해준다 해도, 인정해야 하는 하는 현실은 식용으로 사용되는 개들이 한국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버려지는 개들이 넘쳐난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동물보호단체와 유기견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올려놓는 학대받고 끔찍한 환경에 놓인 개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는 기본적인 생명의 존중과 복지가 이루어지지 않는 유기견과 식용견으로 사용되는 개들을 다루는 문제이다.
한편으로는 반려견들의 늘어난 기대수명과 함께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노령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개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는 반려견의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은 당장 해결하기가 어렵다. 수의학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반려견을 향한 사랑과 치료의 열정이 있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암으로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유기견과 식용견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전히 장애물이 있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기를 기대할 수 있다.
불치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반려견의 암을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는 사람에서도 암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수의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급박한 현실 가운데 처한 한국의 유기견, 식용견의 문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암으로 고통받는 반려견과 가족들의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유년시절의 나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인간에 의해 생명을 잃은 개들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렇다면 암을 연구하는 비효율적인 일보다 개를 고통으로부터 당장 구출하는 일에 더 헌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계속 암을 연구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느리고 오래 걸리고 많은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유기견과 식용견의 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비겁하게도 그저 눈을 감아버린 일들이 많았다.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곤 했다.
미국에 나와서 한 걸음 떨어져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니 오히려 그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 일에 기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 그들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마음의 짐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제라도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수의학에서 암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암으로 고통받는 반려견과 그들의 가족들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일을 조금이나마 막기 위해서 말이다. 반려견의 암 연구는 매우 미비하다. 반려견에서 발생하는 암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없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의 종양학은 그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 있다. 그것이 한편으로는 이점이 될 수 있다. 완벽히 같진 않지만 사람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을 이용해 반려견의 암을 연구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은 다양한 야생 동물에게서도 자연적으로 발생하지만, 특히나 개의 경우 암 발생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인위적으로 품종을 무분별하게 개량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유흥을 위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야기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인간의 몫이다. 그것이 개를 위한 수의학의 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내가 지금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