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반려견과 반려인들의 천국일 것 같지만, 그렇다고 모든 미국인이 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음식점이나 카페, 공원 등에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니 당연하다. 공공장소에서 반려견 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곳도 많이 있다.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엔 입구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We love dogs, but they can't come inside :(
저희는 개를 사랑하지만, 아쉽게도 카페 안으로는 개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견주들은 길거리를 가다 행인과 지나치게 되면 바로 반려견의 목줄을 몸 쪽으로 바짝 잡아당기고 가능한 멀리 상대방과 떨어진다. 나는 그런 태도를 느끼면서 속으로,
"난 개 좋아해서 굳이 저렇게 안 해도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내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수의사인지, 개를 연구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반려견과 함께 하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을 마주치게 되면 기본적으로 지나가는 행인이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고 간주하고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집은 전세가 없기 때문에 렌트를 하는 경우 아니면 구입을 해야 한다. 렌트를 해야 하는 아파트인 경우 (콘도 미니엄이라 부르기도 한다), 반려동물 금지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개에 비해서 고양이는 허락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 아무래도 개는 고양이에 비해 크기가 큰 경우도 많고 시끄럽게 짖는 경우도 많으며, 배변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렌트를 해주는 아파트 입장에선 관리하는 측면에 드는 비용을 포함해서 자기네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반려동물 정책을 결정한다.
고양이가 허락되더라도 렌트비에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한 보증금과 함께 매달 추가 요금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개가 허락되는 경우에도 품종의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다른 개에 비해 공격성이 있고 타인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키울 수가 없다. 핏불 테리어나 독일 셰퍼트 등의 품종이 렌트 계약서에 아예 명시되어 있다. '저희 핏불 테리어는 아주 순하고 한 번도 사람을 문 적이 없어요'라고 항변해봤자 소용없다.
입주를 할 때 아파트 매니저가 개 품종이 허용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나의 직장 동료는 독일 셰퍼트가 일부 섞인 반려견을 키우는데 매니저가 셰퍼트라고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파트 매니저는 그것을 문제 삼진 않았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으면 허락이 되는 아파트를 구하거나, 집을 구입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개가 허용되는 아파트에 살더라도 모든 사람이 개를 키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면 지내야 한다. 내가 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면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엄청 큰 개와 마주쳤을 때 당황하고 놀랄 수 있다. 반려견 주인은 개가 허용되는 아파트인데 왜 저러냐고 하지 않는다. 방문객일 수도 있고, 개를 안 키우면 이 아파트에서 살면 안 된다는 조항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 또한 반대 입장을 배려해서 너무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 모두가 서로를 위해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 돈 주고 집을 구입해도 개를 못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젊은 커플들이 뉴욕이나 시카고 도심의 허름한 아파트 (쓰러질 듯 보여도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에서 살거나 아니면 가족 중심의 단독 주택에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로 지하실과 차고가 있고 2-3층 높이의 계단이 있는 건물, 넓은 잔디밭, 수영장 등이 있는 그런 주택이다. 이웃과 떨어져 있고 사유지이기 때문에 어떤 개나 동물을 키우든 상관이 없다.
이와 다르게 여러 가구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의 주택도 존재하는데 타운하우스 또는 타운 홈이라고 한다. 주로 일렬로 붙어있어서 위아래로는 다른 집이 없어도 옆집 벽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은 밖에 잔디 관리나 낙엽 및 눈을 치우는 일을 직접 하지도 않고 일명 관리비를 내고 관리를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생활하기 편한 장점이 있다. 대신 위에 말한 아파트처럼 타운하우스는 구입을 하더라도 그 커뮤니티에서 합의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허락은 되지만 개의 경우 제한이 있다. 공격성이 있는 품종과 개의 크기와 무게가 정해진 선을 넘어가는 경우 키울 수 없다. 약 15 킬로그램을 초과하는 개는 키울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무게가 넘어가는 중형견이나 대부분의 대형견은 내 소유의 집이어도 키울 수가 없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왜 내 돈 주고 내 맘대로 개를 키울 수 없습니까!'
'집 없으면 개도 키우지 말란 말입니까?!'
라고 항의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개를 키울 수 있는 집이 없으면 당신은 개를 키울 수 없다. 그곳의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집이 아무리 맘에 들어도 포기해야 한다. 이렇게 미국에서도 개를 키우기 위해 고려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물론 미국에 이런 것들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주마다 다르고 그 지역 이웃과 커뮤니티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에서도 반려견과 함께 하기 위해선 많은 제약과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