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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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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Dec 22. 2018

# 노숙자의 반려견

노숙자의 개를 '반려견'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할까 그렇지 않을까?


반려견은 사람의 친구 및 가족이 되어 함께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내가 현재 거주하는 곳은 한 겨울인 12월, 1월에 영하 20-30도까지도 내려가는 매서운 추위를 자랑한다. 오죽하면 미국의 냉장고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따뜻한 남쪽 지역에 비해서는 길거리에 비교적 노숙자가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추운 한 겨울에 밖에서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노숙자를 통해 인권과 사회구조를 생각해 보면,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어떤 사람은 100억짜리 집에 살며 10억짜리 고급 스포츠카를 타는 반면, 어떤 사람은 허름한 옷을 입고 추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반대로 노숙자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추운 겨울에 일부러 나와서 구걸을 한다는 냉소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감내하면서까지 영하 25도의 추위에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럴 집념과 정신으로 일을 하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17년 12월 30일 오전 9시 47분. 영하 28도.

위에서 보는 것처럼 영하 28도까지 내려간 적이 있는 혹독하게도 추운 지난 어느 겨울날이었다.


도심 근처에 지인들과 식사를 할 자리가 있어서 한국식당을 방문했다. 길거리에 주차를 하고 식당 입구에 다다랐을 때 건물 한 구석에 3-4명의 노숙자 무리들이 있었다. 해가 일찍 져 어두운 저녁, 바닥엔 이부자리 대용의 침낭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인가가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곳엔 개 한 마리가 한 노숙인을 껴안은 채 앉아있었다. 어둠 속 희미한 조명이 숨기지 못하는 눈에 띄는 커다란 덩치와 하얀 털의 그레이트 피레니즈였다.  

<1박 2일>에 출연한 상근이와 같은 그레이트 피레니즈

미국에서는 노숙자가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유럽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보통 이런 장면을 처음 보게 되면 나오는 반응은 대동소이하다.


'개가 불쌍하다'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는 전제된 생각은, 노숙자 본인의 형편도 챙기지 못하면서 왜 개를 데리고 있냐는 힐난이다. 좀 더 불쌍하게 보이기 위한 영업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노숙자 본인은 이유야 어쨌건 본인의 선택과 의지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기에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시선이 많다. 물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인한 것일 수 있음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길거리를 걷다 스치는 찰나의 그 장면을 통해 일차적으로 따라오는 반응은 노숙자에 대한 비난과 함께 개에 대한 연민이다.


개의 삶은 자신의 노력 여하가 아닌 철저히 자기를 선택한 주인의 운명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는 노숙자 주인이 돈이 없다고 도망가지 않는다.

그 개의 품종이 왕가 및 귀족의 기호에 맞춰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도록 개량되었다 하더라도, 개는 본인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는다.

주인에게 불만을 퍼붓지도 않는다.

오히려 잠잠히 그리고 묵묵히 영하 30도를 육박하는 추운 겨울 날씨에도 주인에게 체온을 나눠주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노숙자의 개를 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온당한 반응이다.

 

그러면서 한편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동물과 함께 인간에 대해서도 좀 더 따뜻할 수 없을까.

동종인 사람에게마저 긍휼함을 받지 못하는 노숙자들의 삶이 어찌 보면 '개보다 못한' 삶이 된 건 아닐까.

그렇기에 오직 개만이 그들을 위로하는 친구가 된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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