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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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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an 18. 2019

# 개 말고 불쌍한 어린이를 도우세요

개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접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소리다. 인터넷 댓글에도 넘쳐나긴 하지만 익명으로부터 전달된 기계에 입력된 글자가 아닌, 사람의 육성으로도 종종 선명하게 들려오는 말이다.


"왜 이렇게 (불필요하게) 개에 관심이 많아?"

"개를 살릴 돈과 열정으로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을 도우세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게는 간단하다. 그게 내 직업이니깐 그렇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수의사가 개 얘기하는 걸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아닌가. 이제는 대놓고 그러는 사람은 없다. 동물병원까지 쫒아와서 수의사한테 다짜고짜 '왜 개 따위를 치료하는데 이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당신의 삶을 바칩니까. 때려치우세요'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만취한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동물병원에서 매일 일하지도 않고 전형적인 수의사 이미지처럼 흰 가운(사실 수의사는 흰 가운을 잘 입지 않는다)을 입고 일하지도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수의사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많고 자기 소개할 일도 흔하다. 짧은 기간 연수를 오는 사람, 석사 학위를 위해 2년 공부를 하러 오는 사람, 박사후 연구원으로 1-2년 오는 사람, 박사학위 과정을 하며 4-5년 있는 사람 등, 각종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많이 만난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잦은데, 친분이 전혀 없는 첫 만남의 자리에서 '당신은 내가 볼 때 참 쓸데없는 일을 하시는군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얘기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당신이 눈치 없이 자꾸 다른 사람들 관심 없는 개 얘기만 하니깐 그런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동물 보호하라고 강요하고 한쪽만 주장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나는 동물 보호 활동가도 아니고 관련 사회활동을 하지도 않는다. 페북에 글도 안 올린다. 위에 말한 것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무리에 사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가지면서 살다 보니 때론 식사 자리에서, 커피숍에서,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형식적으로 시간을 때우는 대화 속에서 나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한국에도 반려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본인이 개를 키우지 않고 싫어해도 그에 대한 생각을 각자 나름으로 갖고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직접적으로 '개를 먹지 마세요. 식용견이라고 누가 따로 정했습니까. 개농장의 끔찍한 현실을 보고도 개를 먹나요?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세요'라고 만날 말하면서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전문 사회활동가가 아니라면 그렇게 해서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기 어렵다.


내가 만약

"저는 옐로 스톤 국립공원의 유황 온천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에 대해 연구합니다"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우와, 참 독특한 연구를 하시네요. 재밌겠네요"


하면서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개라는 동물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가까이 있는 동물이기에 좀 더 대화가 확장되고 진행되는 경우가 흔하다. 개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뭐라도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개에 대한 시각과 온도차가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있게 마련이다. 매번 그런 일이 발생하진 않지만 간혹 이런 얘기를 듣거나 그런 생각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개 따위에 신경 쓰고 돈 쓸 바엔 아프리카에 죽어가는 아이들이나 도우라'라고 말이다.


이 말은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는 인권을 탄압받고 고통 가운데 처한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분명 그러하다.

그런데 의로운 척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런 아이들을 돕지도 않고 평소에 관심도 없으면서 의로운 체한다.

사회를 위해 도움되는 일은 관심없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갭투자니 경매니, 부동산이니 하는 것에 목을 멘채 부자가 되려고 혈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단지 부의 축적이 아니더라도 자기와 본인의 가족들만을 챙기는 지극히 이기적 본능에만 집착한 채 살아가면서 뜬금없이 소외되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언급하며 가식을 떤다. 말로만 정의로운 척 도덕적인 체한다. 동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근거를 찾다가 뱉어내는 배설물일 뿐이다.  


각 사람은 도덕적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폄하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도덕적 가치 판단 기준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더 중요하니깐 동물을 보호하는 일에 신경 끄고 사람을 도우세요'라고 말할 순 없다. 동물과 자연도 그 나름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 개 따위에 신경을 쓰세요'라고 하는 말은

'왜 그렇게 하찮은 수의사 따위가 되셨어요. 그게 인생을 걸만한 일인가요? 그걸로 차라리 아이들을 도우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상엔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많은 일들이 있다. 아이도 중요하고 가난한 자도 중요하고 물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고 회사 동료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하는 것 모두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걸 한 사람이 다 할 수도, 한 번에 다할 수도 없다. 우리는 많은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한 명이 한 가지 일을 맡아서 해도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각 개인이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물론 피치 못하게 이익이 상충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최전방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런 경우는 그다지 없다.


당신이 지금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내게는 참으로 고맙고 아름다운 모습 이리라! 하지만 커피 몇 잔 마실 돈을 모으면 아프리카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며칠 또는 몇 달을 살릴 수 있는 금액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당신에게 커피 마시지 말고, 커피숍에 가지도 마라고 말한다면 '웃기는 사람이네. 너나 잘하세요'라는 얘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를 것이다. 커피를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그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하는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테레사 수녀처럼, 슈바이처처럼 인생을 전부 바칠 순 없다. 물론 그렇게 하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그렇게 하지도 않을테지만.


대학생은 이 전공 공부를 하는 게 인생에 무슨 쓸모가 있을지 고민하며, 아까운 원룸 방세를 지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싼 핸드폰과 태블릿과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전공서적도 사야 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데이트도 해야 된다.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고 맛집도 찾아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다. 직장인은 사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 회사를 다니며 눈물을 머금고 돈을 벌어야 하기도 하고 그 돈으로 밥 먹고 생활비를 써야 한다. 주택 대출금도 갚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이다. 내 인생의 즐거움을 모두 포기하고 '좋은 일, 도덕적인 일'에만 헌신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삶이 우리를 무조건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지향해서도 안된다.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다른 친구를 욕하는 시간을 조금 줄여서 책 한 권을 읽는 것. 인생을 바쳐서 사회에 도움을 주려는 단체의 활동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까. 이 세상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삶으로 삶의 방향성을 갖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조금더 아름답게 할 수 있다.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도 있다. 내가 못하는 일들을 다른 분야에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 맡겨진 일, 좋아하는 일, 내가 관심 있는 일을 통해 어떻게 세상에 유익이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하등 쓸모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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