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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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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Feb 17. 2019

# 개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인간의 사후세계도 확신하지 못하는 존재가 개의 사후를 운운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호기심은 동물의 죽음 이후의 삶에까지 미친다. 인간과 똑같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 죽는 일련의 과정을 공유하는 동물의 죽음 이후의 삶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 흔히들 사람들이 반려동물이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하는데 그 너머엔 뭐가 있을까.


무신론자나 회의론자의 입장에선, 인간의 사후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동물의 죽음도 곧 소멸을 의미할 것이다. 인간의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데, 동물의 사후세계만 특별히 존재하리란 생각은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삶이 지각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동안에 동물을 사랑할지 미워할지 결정될 뿐이고, 그 여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의존될 것이다. 내가 회의론자라면, 굳이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반려동물을 나의 재산이나 친구로 여겨서 소중히 여길 순 있을지언정, 동물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할 이유가 하등 없으리라. 아무런 도덕적 의무나 책임 없이 개인의 즐거움과 유익, 편리를 위해 동물을 이용하다가 삶을 마치면 되지 않을까. 개인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마존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나 하나의 삶도 간수하기 힘든 세상에, 동물의 고통과 복지까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불교의 윤회설과 같이 환생하는 삶이라면, 전생에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스러운 반려견으로 살았던 개가 사람으로 환생하면 동물에게 우호적인 존재로 살게 될까? 식용견으로 키워져 짧은 삶을 마치고 환생하면 인간에 복수하기 위해 악한 사람으로 살아갈까. 그저 무작위의 환생이라면 그 또한 인간이 동물에 친절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동물에게도 사후세계가 있다면, 선악의 구분 없이 그저 영혼이 떠도는 중립의 저 세상 무언가로 회귀한다면, 그러한 이생과 저생을 유지하는 시스템은 무엇일까. 그 시스템 안에서 인간의 사후도 동물과 똑같은 길을 걸어가서 결국은 만나게 되는 것일까.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동물에게는 그것이 신에 대한 믿음이나 행위로 가는 것은 분명 아닐 터이다. 그럼 인간은 천국과 지옥을 가고 동물은 또 다른 중립 제대로 가는 것일까.


C.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란 책에서 천국과 지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지옥은 화염과 불구덩이가 가득한 곳이라기 보단 창조주로부터 분리되어 이생에서 집착했던 이기적 욕망과 자아에 대한 끝없는 사랑, 고집, 신념, 가치관등에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상태라고.

루이스의 관점을 동물에게 적용해본다면, 인간에 의해 유전적 형질이 조작되어 오직 사람만 평생 바라보며 따랐던 개가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여전히 주인만을 그리워하는 지옥일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인간의 그늘 아래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으로 회귀할지도 모르겠다. 또는 인간을 잘 보살피며 이생의 삶을 충실히 잘 살았다고 조물주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천국의 삶을 누릴지도 모를 일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개의 기원은 1만 5천 년~4만 년 전의 늑대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전 늑대가 인간에 의해 가축화된 과정은 단지 인간 주도하에 일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두 종의 집단이 생존을 위해 행한 쌍방향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개의 조상 늑대로서는 털도 없고 이빨도 무딘 인간이 이렇게 위험한 종인지 미처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생존 전략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무모하고 위험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생물의 종족 보존이란 측면에서 볼 때, 늑대는 인간의 살상에 의해 멸종위기에 다다랐고, 개는 전 세계에 넘쳐나니 늑대의 계약은 결국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인간과의 계약을 통해 잃은 것이 많을지언정, 생존이 달린 번식의 문제를 인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만들었고, 개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번식을 지속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변형된 다양한 표현형을 보이는 자손들로 분류되면서, 유전적 질병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긴 했지만, 종의 몰락을 가져올 만큼의 위험엔 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의 죽음 이후의 삶은 확인할 방도가 없다. 창조주의 피조물이라면 이생에서 개를 어떻게 대했는지 인간이 판단을 받을 것이고, 개는 그대로 칭찬을 받을 것이다. 진화론의 산물이라면 죽음 이후의 어딘가에서 (만약 존재한다면) 위험에 처해있는 늑대 조상들보다는 생존에 훨씬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게 되었음에 떳떳하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늑대 조상님들! 인간과 계약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습니다.”

“인간은 우리에게 반려동물이라는 칭호를 부여했고 우리만을 위한 수의학 기술도 계속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우리 종의 운명은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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