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겁은 없었다. 어두운 밤길도 잘 다녔고 귀신 따윈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오히려 겁이 많아진다.
잔인한 영화는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적나라하게 살인 현장을 묘사한다던지, 시체를 화면에 클로즈업 한다던지 하는 내용 때문에 19금이 표기된 영화들을 그리 선호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런 장면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었을 때 눈을 감진 않는다. 영화의 연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된 픽션의 일부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감정은 바뀌게 마련이니깐.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무섭거나 잔인한 영화를 잘 보는 편이다. 잘 보는 것과 즐기지 않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왜 굳이 그런 잔인함이나 자극적인 장면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영화들이 많다.
수의사가 되려면 국가로부터 공인된 교육기관에서 일정 기간 정해진 이론과 실습수업을 이수하고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원치 않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감적 경험이 포함되기도 한다.
"징그러움"이라고 표현되는 거북한 시각적 효과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악성의 피부병이나 도려진 살, 상처, 골절 등으로 정상적인 형태가 변형된 것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파충류, 곤충, 기괴한 어패류 등은 사실 자연 그대로의 산물이며 그 독특함 자체가 고유의 '정상 형태'이기 때문에 내게는 그런 것들이 혐오나 징그러움을 유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상의 모습이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변형된 상태는 사람들에 불편함을 유발한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것은 혐오가 아니라, 안타까움 및 동정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만약 여기서 감정이 끝나버린다면, 임상 수의사로의 자격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수의사에게 설령 간접적 경험을 통해 접하는 시각적 불편함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병원이나 특정 상황 내에 들어오게 되면, 어떠한 감정이나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성이 그 상황을 지배하게 된다. 동물병원에서 피와 상처를 본다면, 그 상황을 해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치료를 위해 생각과 행동을 취하는 것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수의사가 보호자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한편으론 감상에 젖거나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에서는 몸이 아픈 환자가 있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의 형태가 손상받았기에 치료가 이루어진 곳이 병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와 같은 잔인한 장면을 보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는 그런 감정이 유발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