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영세 상인이 가게를 하다가 초심을 잃으면 경제적 손해를 보고 망하면 그만이다. 물론 가족이 있다면 큰 일이지만.
영향력이 커지면 책임이 많아지는 것이지,
권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향력이 커지면 명예욕과 권력에 사로잡힌다.
'내가 할 수 있다'가 반복되다 보면,
'나는 해도 된다'가 자리잡게 되고,
어느새 '나만 해야 된다'로 둔갑한다.
연일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보호단체에 대한 르포가 화제다. 르포를 주도하고 공개하던 주체가 르포를 당하는 객체가 되었다. 검사의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세상을 심판하던 자는 이제 심판대 앞에 선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고 그의 행보를 자세히 알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순수한 초심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물론 지금은 초심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이미 오래전에.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생소하고 척박한 동물보호운동 분야를 대중화시킨 업적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을 시작할 때의 초심은 분명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일에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명예욕에 사로잡혀 시작하진 않았을 테니깐.
개인 사업자가 초심을 잃으면 손님과 고객을 잃고 사업이 망하는 것으로 그친다. 반대로, 사회적 기업이나 단체가 초심을 잃으면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던 진심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한다. 자신을 세상 가운데 드러내고 환호받는 자리로 올라선다.
특히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일을 고귀한 척 포장한 채, 스스로 고귀함과 우아함에 도취되었을 때의 결과는, 다른 무수한 생명의 고귀함을 한낱 종이 위의 볼펜 찌꺼기로 전락시킨다.
인간은 선함과 추악함 사이에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존재이다.
선한 길로 나아가는 걸음은 느리고 미미한 한 걸음이다. 때론 힘들고 고통스러워 얼굴을 찡그리기도 한다.
악마와 타협하는 길은 섬뜩한 웃음과 순간의 희열을 준다.
명예욕이란 환각제를 자신의 팔에 찔러 주사하고 내달리는 전력질주이다.
그 악마는 본인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