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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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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an 08. 2019

# 개의 암을 연구하게 된 이유

군대를 다녀오니 졸업까지 주어진 시간은 2년이었다. 수의사가 되기 위해 남은 수의학과의 과정은 본과 3, 4학년의 임상과목이 주를 이루었다. 임상과목이라 함은 내과, 외과처럼 동물을 실제로 진료하고 치료하기 위한 학문을 배우는 것이다. 임상 과목을 배우니 정말 수의사가 되는 문턱에 온 느낌이었다.


본과 3학년. 수의 내과 첫 수업이 기억난다. 교수님께서는 내과에 어떤 세부 분야가 있는지를 먼저 나열하셨다. 심장학, 내분비학, 피부학, 신경학, 소화기학, 호흡기학 등 신체기관에 관련된 모든 분야가 망라된 종합학문임을 강조하셨다. 나는 그중에 수의 종양학에 왠지 모르게 끌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낯섦에 대한 매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에서 암이라는 것은 사람에서보다 훨씬 더 미지의 영역이다. 유년시절의 떠올려 보면, 시골 개들에게 중요한 수의학적 처치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나는 바이러스 및 세균성 질병, 또는 기생충 관리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그러한 질병들은 수의학적으로 정복되었거나 비교적 관리가 쉬운 질병에 속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2000년대 초부터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령성 질환이 증가했다. 하지만 노령성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는 여전히 수의학적인 한계가 많이 존재했다.


동물병원 실습 당시 보았던 한 반려견은 소형견인 포메라니안이었는데, X-ray상으로도 확연히 나타날 정도로 그 작은 배 전체를 난소암 덩어리가 덮고 있었다. 나이도 많고 복강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암의 크기를 볼 때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공부를 거듭할수록, 수의사가 될 시기에 가까워 올수록, 동물을 대하고 치료하는 현장에 나간다는 것이 과연 내가 꿈꾸는 동물을 위한 길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특히 암에 대해 현재 수의학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암에 대한 지식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수의 병리학을 전공하고 암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개는 암에 잘 걸린다.


그중에 특히 암컷 개에서 제일 많이 발생하는 것은 유선종양이다. 사람에서는 유방암과 같은 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암컷 개를 10년 정도 키워 본 사람이라면 유선 종양에 대해 익히 들어봤거나 경험했으리라 생각된다. 유선 부위에 혹이 만져진다면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몸 전체가 털로 덮여 있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조기에 보호자가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많은 경우 종양의 크기가 꽤나 커진 후에야 동물병원을 찾게 된다. 동물 병원에서는 치료법으로 유선을 한쪽 또는 전부 다 제거하는 수술을 어렵지 않게 시행할 수 있지만, 유선 종양의 50%는 악성으로 진단이 되고 그것은 곧 반려견과 함께 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악성 유선 종양의 경우 수술을 하더라도 재발을 하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생존율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더더욱 없다는 것이 수의사와 보호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반려견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조기에 질병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방학적 측면에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유선 종양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반려견에게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 첫 발정이 오기 이전에 중성화를 시키면 무려 95%의 확률로 예방을 할 수 있다. 자궁 축농증에 대한 예방과 더불어 중성화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가장 대표적인 효과로 언급되는 이유이다.


중성화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의 차이가 있다. 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중성화를 시키는 것은 또 다른 질병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동물 복지에 대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선 종양에 한정해서는 중성화의 효과가 확실함은 분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에서는 유선종양의 발생률이 현저하게 낮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성화 수술을 많이 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유럽, 브라질과 같은 나라에서는 유선 종양 발생률이 비교적 높다. 그러한 이유로 유선 종양 연구의 대부분은 유럽과 브라질에서 행해진다 (브라질에서 의외로 유선 종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이것은 중성화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개의 유선 종양을 연구하면서 나는 암 조직에 면역 반응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에 주목했다. 암이 자란 부위에 면역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무제한적으로 자라는 특징이 있다. 암세포가 비정상적인 조직을 자라게 하고, 그것은 곧 주변의 정상조직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암세포가 증식하는 부위에 확연하게 많은 면역 세포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며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사람의 암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지금 가장 획기적이고 주목을 받고 있는 암 치료법이 면역 치료 (Immunotherapy)이다. 이를 증명하듯 면역 치료의 기초에 지대한 공헌을 한, 두 명의 연구자가 2018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개의 암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면역 치료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당장 개의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암으로 고통받는 반려견과 그 가족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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