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쓰는 건지 네가 나를 쓰는 건지
바야흐로 글쓰기의 시대란다.
읽는 사람은 없는데 쓰는 사람은 많다고 한다.
책은 안 팔리는데 책을 내는 사람은 많다고 한다.
글쓰기의 기술이란 책이 팔린다.
에세이가 대세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았다.
직업상 과학논문을 더 많이 본다. 논문과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글쓰기가 필수적이다.
지금 나는 에세이를 써본다고 끄적인다.
자기 계발서를 안 읽은 게 자랑이라며 자기 계발서를 낸 저자의 책을 본 적이 있다. 자기 책이 최고의 자기 계발서라는 마케팅의 일환이겠지. 이율배반적이고 오만한 태도가 아닌가. 정작 자기는 그런 책을 보지 않았으면서 독자들에게 기존의 자기 계발서를 뛰어넘는 본인의 자기 계발서를 보라니.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에세이를 읽어본다. 기왕이면 베스트셀러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읽다 보니 난 감성이 떨어지는 사람인가 보다 생각한다.
작가마다 문체가 있다던데 글쓰기 스타일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당신과 세상이 대결하는 느낌이 든다면,
실제로는 당신과 당신 자신이 대결하는 게 현실일 가능성이 크다.
한 베스트셀러 저자의 말이다.
그래 내가 문제겠지.
좀 더 노력해 보자.
글쓰기 관련 조언의 글들을 주욱 보다 보니, 간결하게 써야 한다고 한다.
길면 사람들이 안 읽는단다.
소설처럼 묘사도 해야 하고 감탄사도 넣어야 한다.
내겐 수학 공식처럼 느껴진다.
문장 사이에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경우도 많다.
감정의 흐름이 뚝 끊겼다가 뜬금없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다.
왜냐하면 그게 '감성 에세이'니까.
감성은 논리적 취약함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똑같은 형식에 대한 의구심.
같은 장르의 음악이 유행되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도입, 후렴, 간주, 후렴으로 반복되는 형식을 갖춘 발라드처럼.
윤종신이 언젠가 MBC <라디오스타>에서 말했다. 90년대에는 4-5분여 길이의 곡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노래에 간주가 사라져 버렸단다. 사람들이 간주를 듣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대중음악은 대중의 기호와 입맛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옳을게다.
만약 퀸이 유명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시대에 인디밴드가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곡을 들고 나왔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기 좋게 낙방했으리라.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저자 고유의 스타일을 따릅니다."
라고 쓰여있는 책을 본다.
사람은 익숙한 대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요구되는 스타일이 있을게다.
한번 따라 해 본다.
그러곤 다시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