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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an 21. 2019

누런 불빛 아래에

미국 생활의 여러 특이점 중에 하나는 이 누르스름한 불빛이다.

형광등이라 불리는 긴 가로 막대 형태의 하얀 불빛이 오직 집안을 밝히는 도구라고 믿었다.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힌 사각형의 공간 내에는 반드시 한 개 이상의 하얀 불빛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의 요구사항이나 선택 조건이 아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릴 적 간혹 빨간 전구가 취침등이란 이름으로 달려있던 기억이 나지만 2019년 현재는 인테리어계의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각종 화려한 전등이 인테리어를 수놓지만 그 심장은 백색 조명이다.


거실 전등 하나가 수명을 다했다. 5개 전구가 같이 달려있던 터라 톤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 나머지 4개도 한꺼번에 바꾸어야 했다. 기존의 전구는 LED가 아니라 이때다 싶어 효율적이고 오래간다는 신문물로 기분 좋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루에 3시간씩 사용하면 15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란다. 필라멘트가 끊어지거나 검게 그을린 형광등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아도 된단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형광등 사용법 따위를 티비에서 알려줬는데, 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노하우의 가치를 축소시켜 버렸다.


전구를 잘못 선택한 것인지 밝기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600 lumen'이라고 쓰여있는 수치의 의미가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전구를 싸고 있는 등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누런 불빛에 익숙해질 법한 때에, 왜 이런 누리끼리한 조명을 쓰는지 전주인과 이들의 문화에 괜한 생트집을 부린다.


추운 겨울 누르스름한 불빛은 따스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하얗게 눈이 쌓인 골목에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은 따뜻한 감성을 일깨운다. 하지만 현실은 불을 밝게 너무 많이 켜면 전기세가 많이 나올까 걱정하는 감성 파괴자가 항상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누런 불빛에 기대어 책을 하나 집어 든다. 핸드폰의 하얀 불빛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얀 종이가 누런 갱지가 되었고 검은 글자는 해상도가 떨어졌다. 독서를 멈춘 구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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