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살아간다
모든 사람은 예민하다.
어떤 사람은 예민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둔감해 보이지만, 이 세상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예민함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다를 뿐이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가치관과 고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는 착한 사람도 많은데요?라고 반문할 수지도 모르겠다.
이타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양면의 동전과 같다. 때론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결국은 본인의 이기심에 기인하기도 하고, 이기적 선택이 이타적 결과를 파생하기도 한다.
아무튼 예민함이란 것은, 단지 신경질적인 반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민함을 유발하는 요인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아무리 무던해 보이고 둔해 보이는 사람도 자기 고집이 있다.
자기 기분이 있다. 자기감정이 있다. 누군가 본인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난다.
화를 외부적으로 표출하는 적극적 반응 대신, 때론 우울함이나 자기 연민, 열등감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은 모두 본인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일에 예민하다.
상대방의 말로 느낄 수도 있고, 일의 성취 여부에 따라 경험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자기 기준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음식의 맛에 예민하다. 음식의 맛이 본인의 식성과 조금만 달라도 예민하게 굴며 짜증이 난다. 치즈 돈가스에 치즈 함량이 조금만 달라져도 맛의 차이를 느끼고 기분이 나빠진다.
이와 반대로, B라는 사람은 맛집과 망하기 직전 식당 음식의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아예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B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식당의 음식이 맛없는 건 참을지언정, 직원이나 손님의 무례한 행동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때로는 상대방이 아무 뜻 없이 던진 말도 확대 해석하여 자기를 무시한 발언인지 아닌지 따져본다. 심지어 본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 아님에도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했다는 것 자체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런데 음식의 맛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A는 그런 B가 이해가 안 간다.
예민하게 느끼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고 그 기준이 너무 다양하기에 그것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나열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누구나 본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의 폭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예민함은 우리 삶의 질을 가장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이다. 반대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타인에 대한 시각과 그에 대한 예민함을 얼마나 잘 다룰 줄 아는가가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 가는 과정에 필수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10대는 미성숙이 당연한 질풍노도의 시기.
스무 살의 예민함은 청춘의 싱그러움.
서른 살의 예민함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사회 경험이 부족해서, 라는 말로 포장될 수 있다.
마흔 살은 어떨까.
마흔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하는데, 마음의 유혹도 포함되지 않을까. 이 세상을 함께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노력, 본인과 맞지 않아도 어울리고 상대방의 인격 그대로를 존중하는 태도. 그것이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타인에 대한 예민함이 지속된다면,
나를 돌아보는 성찰을 갖지 못하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여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이탈해 버린다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경험하는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영영 저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