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커피숍에서
해가 이미 중천에 뜬 늦은 아침,
평소와 같이 노트북 하나, 도시락 하나를 싸들고 집을 나선다.
오늘 하루를 버틸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멘다.
데드라인에 쫓기는 촉박한 마음은 가방을 들어 올리는 오른 팔의 근육보다 더 긴장한 상태다.
패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콜롬비아 등산용 가방과 보온기능이 가능한 도시락 가방은 도시의 세련됨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구글 지도는 내게 26분이라는 시간을 가리킨다. 시동을 켜자 블루투스로 아이폰이 연결된다. 유튜브에서는 인공지능이 추천해 준 항목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되어 표시된다. 자세히 보지 않고 대충 아무 노래나 터치한다. 웬 유스케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라며 음악이 흘러나온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신호등에 앞에 서서 고민한다. 커피를 한잔 하고 갈까. 말까.
어디를 가지.
스타벅스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카리부? 어제 아메리카노를 한잔 했다.
던브로스? 그저께 오랫동안 앉아 있는 바람에 라테와 커피 두 잔이나 먹었다.
오늘은 오피스의 캡슐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다.
앞 차의 브레이크등이 켜지는 걸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의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신호는 뇌로부터 운동 신경에게 주문을 넣는다. 그 덕에 내 발은 악셀레이터에서 브레이크로 안전하게 옮겨진다.
문득 얼마 전 새로 생긴 커피전문점이 생각난다. 주차장을 가는 경로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지난번 한번 둘러보았을 때 주차 공간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잠깐의 여유를 위해 운전대를 돌린다.
주택가와 도심의 경계.
허름한 벌판과 공사현장이 한창인 곳에 투박한 벽돌로 지어진 창고가 연상되는 네모난 건물.
흰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듯한 입구 벽면은 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도그 헤드.
대머리.
툭 튀어나온 주둥이.
귀인지 파마머리인지 구분 안 되는 꽈배기 모양의 그 무엇.
촌스런 월남치마.
괴상함은 예술적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싫지만은 않다.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이라 불리는 실내 인테리어가 풍기는 모던한 느낌.
오픈 후 처음 오는 곳이지만, 이미 같은 브랜드의 다른 매장을 애용한 터에, 커피 맛은 걱정 없다. 가장 저렴한 $2.50 가격의 ready-to-go 커피를 시킨다. 오늘의 커피는 콜롬비아와 에티오피아 커피를 7:3 정도로 섞어서 조합한 맛이라고 한다.
커피 잔과 슬리브의 디자인이 썩 맘에 안 들진 않지만 크게 중요하진 않다. 자리를 잡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머금는다.
진한 커피 향과 시큼하게 혀를 자극하는 맛이 순간적인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감성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 그럼에도 존재하는 실체.
그 한 모금이 여기까지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다.
왜일까.
아메리카노에선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다.
왜일까.
설명을 하려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감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 똑같이 찍어낸 판에 박힌 노래를 귀에 흘려보내는 것과, 어린 시절 동고동락한 추억의 노래를 듣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20년 전의 노래일지라도 전주만 흘러나오면 그 안에 담긴 추억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커피 한 모금으로 촉발된 이 감상은 어디서부터 설립된 것일까. 확실한 것은 프랜차이즈 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에서와는 다른 것이다.
프랜차이즈 커피도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각각의 고유한 느낌은 위치, 주변 환경, 커피 잔의 문양과 인테리어, 매장에 선곡된 음악의 종류, 직원들의 주문을 받는 태도, 사람들의 뒤섞인 소리가 혼합되어 복합적으로 형성하는 느낌이다. 그것이 커피의 맛과 연결되었을 때 특정 분위기가 연상된다.
커피 한 모금의 효과로 1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자체적으로 1시간 연장근무가 요구된다. 이제 감상은 제쳐두고 논리와 이성에 몰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