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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28. 2019

오랜만의 한국 방문에서 민폐를 끼쳤다

7년 만의 한국 방문은 생각보다 더 새로웠다.

나는 더 이상 혈기 왕성하고 유행에 민감한 20대도 아니었고, 현재 문화와 사회의 방식에서 동 떨어져 있었다. 30년을 나고 자란 터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혼종이었다. 

오래전 군입대를 할 당시, 아버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훈련소에 입소를 하게 되면 '사회 물'을 빼느라 더 엄격하게 훈련병들을 다룬단다. 

사회에 익숙한 것을 버리고 군대의 환경에 적응해야 해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게다" 


한국의 변화상에 대해선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뉴스 기사와 각종 예능 프로그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사람들의 글들을 보면서 그 변화란 것을 감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낯섦과 익숙함의 공존 사이에서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어느 날.  

이른 토요일 아침, 가족 모임을 위한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KTX를 탑승했다.

기차표 좌석을 확인해보니, 아내와 나의 자리가 떨어져 있었다.

승차 당시 탑승객이 많진 않았지만, 부산까지 가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예매를 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은 터에,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자리가 떨어진 것 같았다.

어차피 30분밖에 안 되는 거리이고 빈자리도 많았기에, 누군가 오면 잠시만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거나, 원래 자리라고 돌아가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옮겨 앉았다. 어린 시절 대중교통을 탈 때면 흔한 장면이었고 내 생각은 그 이미지에 고정되어 있다.

서울역을 떠나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한눈에 보기에도 한창 아름다운 20대의 꽃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창가의 좌석이 본인 자리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미소를 띠면서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죄송하지만 잠시만 자리를 바꿔줄 수 있냐고 요청했고,

그/그녀는 별다른 말없이 통로를 사이에 둔 옆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 요청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후회가 몰려왔다. 딱 봐도 내키지 않는 듯한 그/그녀의 표정과 기운이 강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는 약 20분. 

가시방석에 앉은 채로 곁눈질로 그/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다시 원래대로 바꾸자고 할까.'

'20분이면 내리는데 그냥 갈까. 어차피 그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랑 옆에 앉아가는 게 불편할 텐데.'


또 한 가지 우리의 실수는, 우리의 목적지를 말하지 않은 것이었다. 


몇 분 후 그 청년은 우리에게 

"근데 어디까지 가세요"라며 퉁명스러운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아 네 OO역까지 가요"라고 대답했다.

그/그녀는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리 멀진 않으니 참고 가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핸드폰을 응시했다.  


그 몇 분 사이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어디까지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먼 거리를 여행하는데, 최대한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터이다. 그러한 이유로 창가의 자리를 일찍이 예매했는데, 웬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일이 불쾌했으리라. 그/그녀는 일주일 내내, 혹은 한 달 내내 이 시간만을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복작스런 서울을 떠나 조용한 기차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며 주말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말이다. 


나는 왜 괜히 자리를 바꾸자고 해서 이런 사달(?)을 일으켰는지 자책하며 도착지까지 가는 내내 불편함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그 사람도 기분 나빴을 것이고, 그런 반응을 보는 우리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내릴 때 꼭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고, 기분 좋게 오늘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괜히 저희 때문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해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열차의 문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딴 곳을 쳐다보며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거의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아 예'

라고 반응한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사과의 인사를 건넸을 때, 모든 사람이 흔쾌히 괜찮다는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과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방이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그녀는 마지막 사과의 인사를 거절한 게 아닌가 싶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이 사건(?)은 순전히 우리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정해진 자리에 앉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이런 분쟁이 있지 말라고 미리 예약하고 좌석을 확보하는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사람인지라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그녀를 이 자리를 빌려 '돌려까려'는 의도는 아님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더 젊었을 땐 그러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채 나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은 무관심과 불친절로 대했고, 나를 귀찮게 하는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거부감을 가졌으니깐.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공간과 시설을 이용하면서 함께 살아가려면, 정확하고 세밀한 규칙이 필요하고 그를 철저하게 따르는 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합리적인 방식이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은 필연적으로 더욱 그러하다. 


서울, 인천, 경기를 아우르는 수도권 지역에는 약 2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5천만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약 50%에 달하며,  
이 수치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장 큰 메트로 지역으로 기록된다.

특히 서울은 남한 국토의 약 0.6%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 인구의 20%, 1천만의 인구가 생활하고 있다.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고 복잡한 사회 속에서는 개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공공의 이익과 이 사회를 원활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그 청년에게 사과를 전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욕심을 더 부려본다면, 그/그녀가 우리를 떠올리며 진상 탑승객이었다는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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