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의 연구를 가능케 하는 자들
오늘 아침 9시 30분.
디렉터에게서 단체 이메일이 왔다.
오늘 다들 오피스에 계시나요?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카드에 서명을 좀 부탁하려고 하거든요
누구에게 보내는 카드인지 정체도 알 수 없었지만, 서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종종 있는 일이니깐. 간단히 답장을 보내고 몇 시간 후에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아까 말한, 당신이 서명해 주길 바라는 카드를 실험실 직원에게 맡겨놓았어요.
카드가 어디에 있는지 그녀가 알려줄 거예요.
다른 직원들도 서명을 하고 있었거든요.
한 두줄 정도 간단하게 감사의 메시지와 서명을 남겨주길 바라요.
당신의 지원이 우리 연구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요.
고마워요!
실험실에 올라가니 그 직원이 카드의 위치를 알려줬다.
이미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와 서명이 남겨져 있었다.
카드 옆에 놓여있는 펜을 집어 들고 카드를 펼쳤다.
근데 이거 누구한테 보내는 거예요?
라고 내가 묻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90,000 (약 1억 원) 기부했어요.
"아 그렇구나. 정말 고마운 사람이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싸구려 카드 한 장에 몇 글자를 적어 넣었다.
Thank you for your support to our research program.
이것이 1억 원을 기부한 사람에게 드리는 거창한 감사의 표시다.
모든 연구자가 그렇듯 우리도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해 애를 쓴다. 가장 크고 대표적인 연구비 출처는 단연 국립보건원 (National institute of Heath)이다. 물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전미 각지, 때로는 해외에서까지 내로라하는 연구자들이 연구계획서를 제출한다. 연구비 승인률은 고작 10퍼센트 정도이다.
개의 암을 연구하는 것으로 대규모의 연구비를 따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하듯이 미국도 개보다는 사람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개를 연구해서 어떻게 사람의 질병 연구에 획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심사자들을 확신시켜야 한다. 더군다나 마우스와 랫트 같은 실험동물을 이용한 질병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극복해야 할 부분이 많다.
국가 기관에서 운용하는 기금 외에, 우리가 반려견의 암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인은, 동물을 사랑하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지원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십 년 또는 그 이상을 살아온 반려견이 백혈병이 걸렸을 때,
대학 동물병원을 찾아와 치료를 부탁한다. 다행히 치료가 되었든, 불행히 치료에 실패해서 더 큰 슬픔을 겪었든, 보호자들은 그들의 사랑스러운 반려견과 가족들이 암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몸소 경험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적게는 수십 달러에서 때로는 수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암 연구를 위해 내어 놓는다. 그들과 같은 고통을 다른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의 네발 달린 가족들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물론 미국의 반려인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다.
미국에서도 진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진단 검사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추가적인 검사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수술을 거부하고 안락사를 시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료 중에 겪는 수의사들의 고충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보호자의 경제적 형편이 어떠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를 위해 기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속된 말로 '천조국' 시민이기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잔디가 넓은 푸르른 마당과 수영장이 딸린 초호화 요트를 구비한 대저택에 살기 때문이 아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이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오늘도 논문에 한 글자를 남긴다.
다시 한번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