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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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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an 30. 2020

# 대체 왜 개를 키우는 걸까

아빠는 왜 자꾸 개를 키우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막내 동생이 푸념 섞인 말투로 던지는 말이다.

 

2020년.

나는 미국에 살고 있다.

설을 맞아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동생도 설 연휴를 맞아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시골마을에 계시는 부모님 댁에 머무르고 있었다.


지난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시골집에는 백구 두 마리가 마당에 묶여 있었다.

보통 백구 흑구 황구는 진돗개를 지칭하지만, 이 개들은 품종을 알 수 없는 그저 새하얀 똥개 두 마리이다.

Korean Domestic Short Hair Dog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한 달 전 어머니는 그중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다고 하셨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고 예상치 못한 출산이었다.


꼬물꼬물 거리는 새하얀 새끼 네 마리는 제 어미를 꼭 닮았다.  

나는 그 어떤 품종의 개보다 이들을 더 좋아한다

시골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울타리가 쳐져 있지 않은 마당에 묶여있는 개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던 개들과의 교미를 통해 새끼를 배는 경우 말이다.

그래서 아비가 누군지 모른다. 동네에 돌아다니는 개들의 개체수가 빤한 경우, 태어난 새끼의 색깔과 모양 (phenotype)을 통해 유추할 수는 있지만,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물증은 없다. 그런다고 이웃을 탓할 수도 없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 어머니는 두 마리의 수컷 개를 후보군에 올리셨다.

항상 돌아다니는 개는 아니었는데, 잠깐 줄이 풀려서 자유롭게 활개 치며 다닌 녀석을 보았다고 하셨다.

공교롭게 그 녀석도 흰색이었다.

네 마리 새끼가 전부 흰색으로 나온 것은 우연히 일치가 아니리라.

유전의 힘은 강력하다.

생후 한 달. 귀염 폭발


나는 어머니께 여쭈었다.

내가 본 두 마리 중 누가 새끼를 낳았느냐고.

한 마리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많아 까칠한 녀석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사람을 보면 항상 꼬리를 풍차처럼 돌리며 반기는 녀석이었다.


사람에게 싹싹한 녀석이 이번에 새끼를 낳은 어미라고 했다.

그럼 다른 한 마리는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다른 집에 갖다 주셨다 하며 말을 흐리셨다.


어머니 옆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동생이 냉소적인 말투로 끼어들었다.


뭔 말인지 알지?


사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는 이러한 과거의 아픈 기억에 대한 기록이었다.

어릴 적 나는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수십 년이 지나 나는 나이를 훨씬 많이 먹었고 가방끈도 훨씬 길어졌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아버지의 생활 방식과 결정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없다.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라는 단체에서 "시골개 1미터의 삶"이라는 캠페인을 벌인다.

https://www.aware.kr/2018/10/02/%EC%8B%9C%EA%B3%A8%EA%B0%9C-1%EB%AF%B8%ED%84%B0%EC%9D%98-%EC%82%B6%EB%AA%87-%EB%85%84-%EB%A7%8C%EC%97%90-%EC%B2%98%EC%9D%8C-%EB%95%85%EC%9D%84-%EB%B0%9F%EC%95%84%EB%B3%B4%EB%8A%94-%ED%98%B8%ED%94%BC/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 단체에 후원을 했다. 이 프로젝트를 보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돈 몇 푼 보내는 거라니.

나의 직계가족으로부터 행해지는 일을 누군가는 자기의 시간과 돈과 열정을 바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니.

이 일이 내게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나는 그저 비겁하게 한발 물러난다.


1990년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국의 문화였기에 이해했다. 더욱이 나는 너무나 어렸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20년에는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문화는 내 삶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도시 생활을 하는 동생도 체념한 채 그렇게 불만을 토로한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시대. 아파트가 밀집한 도시에선 작은 반려견을 품에 안고 거리를 활보하는 많은 반려인들을 본다.

SNS에는 깨끗하게 목욕시켜 눈이 부시게 빛이 나는 반려견, 반려묘들의 사랑스러운 사진과 영상이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고급 사료와 수제 간식을 먹이며, 반려견이 비만해지지 않도록 공원에서 산책을 시키는 반려인들을 우리의 일상에서 직접 대한다.

동생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런 문화를 직접 겪다가 명절을 맞아 부모님 댁에 왔다.


나의 상황은 어떤가.

서울 한복판에서 수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수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좋은 기회를 얻어 미국으로 건너와 수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개의 암을 연구하는 수십 편의 논문을 출판했고, 세계 최고의 수의 종양 권위자들과 함께 개와 고양이를 위한 소동물 임상 종양학을 집필했다. 미국 수의과대학에서 수의 종양 전문의를 취득하기 위해 레지전트들이 공부하는 전공서적이다.

 

이곳은 반려견의 암 연구를 위해 1억을 기부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https://brunch.co.kr/@writeadog/201


이곳은 암에 걸린 반려견을 위해 방사선 치료에 천만 원을 지불하는 동물병원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통해 반려견에 발생할 수 있는 암을 미리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관이다.

https://brunch.co.kr/@writeadog/112


이 크나큰 간극에서 한쪽 눈을 감아버린 내게 들린,

동생의 한마디가 뇌리에 꽂혀 떠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나도 답하지 못한.  


아니 도대체 왜 키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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