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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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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04. 2018

# 집에 혼자 있는 개 때문에 일찍 퇴근합니다

8시간 이상은 일 못해요

애슐리, 오늘 몇시까지 일해?


"나 오늘 3시에 퇴근해야 되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아침에 할 일이 있어서 일찍 7시에 출근했거든.
그레이슨 혼자 집에 8시간 이상 두면 안되니깐 말야.


이것은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 연구실 직원의 대답이다.


얼마 전엔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우리 연구 프로그램 디렉터가 면접 대상자에게 물었다.

"업무 스타일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럴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일이라서 필요하면 주말에 나와서 실험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는데 스케줄 조정이 가능한가요?"


"주말에 특별히 고정적으로 하는 일은 없고, 저도 유동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다만, 집에 개가 있어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만 아니면요."

면접자의 대답이다.


우리 디렉터는 반려견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얼마 전에 떠나보내고 최근에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집에 새로운 강아지 한마리를 입양했어요.

지금 중요한 시기라 저녁에 일찍 집에 가서 놀아주고 트레이닝을 시켜야 돼요.

그래서 연락이 잘 안될 수 있으니까, 혹시 제가 필요한 일 있으면 낮에 미리 얘기해 주세요."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만큼 바쁜 사람인데 강아지 훈련과 놀아주는 시간은 꼭 떼어 놓는다.


미국이라고 해서 모든 직장이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는 '9 to 5'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업무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더욱이 'Pet-friendly'한 수의과 대학 소속이다.


하지만 화학적, 생물학적 물질이 있어서 안전을 위해 반려동물이 제한되는 실험실을 제외한 일반 사무실에서는 수의과 대학이 아니어도 개를 데리고 와서 일을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 연구실이 아니어도 대부분 직장은 8시간을 일하고 개 때문이 아니어도 칼퇴는 기본이지만, '개 때문에' 빨리 집에 가야 된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30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겐 여전히 문화 충격이다.


사실 집에 혼자 있는 반려견의 경우 8시간도 긴 시간이다. 성견에게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4-6시간 정도라는 주장도 있다. 8시간은 사람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결정된 것이다. 동물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인간의 생활환경에 맞출 수밖에 없는 것이고, 사람은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대한으오 반려동물을 위하는 노력할 뿐이다.


이 부분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 비 반려인들의 비난이 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동물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개를 집에 혼자 그렇게 오래 두는 게 정말 사랑하는 건가요?

학대하는 거지."


이것은 사실 반려인들에게 큰 딜레마이며,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좁은 아파트 환경에서 대형견을 키우는 것을 포함해, 1인 가정에서 개를 혼자 두고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마땅히 좋은 대안을 찾기 어렵다.


그들도 개를 위해 일찍 퇴근하고 싶다. 반려견과 충분히 놀아주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적극적 행동과 결단으로, 반려견을 위해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직장을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 반려 인구 모두가 그런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힘들게 반복되는 고된 하루하루의 삶에 반려견은 힘과 위로, 행복을 준다. 하지만 엄격한 동물 복지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결국은 '반려'라는 말이 무색하게 인간의 이기심만 남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반려견이 아닌 애완견으로 대하는 이기심으로 가득찬 사람을 보면, 반려견을 키울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운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신중한 결정을 통해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만들었다면, 그에 대한 분명한 책임의식과 함께 사람과 동물이 모두 행복한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미 정해진 문화와 환경을 당장은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최선으로 동물을 사랑하고 사소한 하나라도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묶여 있는 우리 집 시골 개가 안쓰럽다면 기회가 날 때마다 풀어주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 아파트의 좁은 환경이 부적합하다면 더 자주 나가서 산책을 시키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등이다.


나 홀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구조의 문제라 할지라도 애정과 관심으로 시작되는 작은 움직임이 언젠가는 큰 변화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서구 사회의 성숙한 반려 문화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 처럼 말이다.  


반려인과 비 반려인의 갈등뿐 아니라, 반려인들 사이에서도 관점의 차이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반려견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비록 천천히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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