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공포증 (Noise Phobia)
개에게 흔히 발생하는 소음 공포증 (noise phobia)이란 질병이 있다. 천둥 번개 소리가 나거나, 불꽃놀이 등을 할 때 반려견이 겪게 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은 미국에서 키워지는 많은 개들에게 고통을 주고 그와 함께 보호자들에게도 괴로움을 준다.
수치상으로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지는 조사된 것이 없지만, 미국에서 이 질병이 많이 다루어지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요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에서는 아직 반려견의 소음 공포증에 대한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고, 품종의 차이에 인한 요인도 고려를 해야 한다.
둘째는, 반려견을 키우는 많은 미국인들이 도심 외곽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일상 중에 반려견들이 접하는 소음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음에 대한 노출빈도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반려견들이 도심의 아파트에 살면서 여러 가지 소음에 익숙해져 있는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셋째는, 간헐적이지만 강하게 나타나는 소음의 강도이다. 반려견에게 갑작스레 들려지는 최대 크기의 소음이 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는 자연에서 나는 천둥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적으로 발생시키는 불꽃놀이의 소리이다. 미국에 와서 여름에 놀랐던 것 중에 하나는, 엄청난 소리의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였다. 창문이 흔들리고 하늘이 깨질 듯이 날카롭게 때리는 어마어마한 천둥소리에 집 안에 있는데도 귀뿐 아니라 몸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단언컨대, 3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천둥소리였다.
불꽃놀이 또한 개들에겐 가장 공포스러운 이벤트일 수 있다. 한국의 여의도 불꽃놀이 행사를 한 번도 가본 적은 없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볼 엄두를 낸 적도 없거니와, 그런 이벤트를 즐길 여유 또한 갖지 못했다. 한국은 주거 환경이 아파트이기 때문에 대규모 행사 때 외에 개인적으로 불꽃놀이를 동네에서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불꽃놀이를 대체할 유흥거리도 많이 있다. 그에 반해 미국은 일상 중에 불꽃놀이를 비교적 많이 한다. 코스트코 마트에서도 대형 폭죽을 판매하고 여름이면 집 마당에서 불꽃놀이를 하기도 한다. 각종 행사와 야외 축제에서 여름이면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특히 7월 4일 미국의 독립 기념일과 새해맞이 행사에서는 가장 큰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가 벌어진다 (물론 언제나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하는 한국의 불꽃놀이에 비교하면, 미국 불꽃놀이는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불꽃놀이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기간 후에 유기견 발생이나 소음 공포증을 호소하는 개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미국의 반려견 40%가 이 증상을 경험하고, 독립기념일 다음날인 7월 5일에 가장 많이 호소한다고 하니 반려견들에겐 참으로 공포스러운 날이리라. 또한 강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자주 몰아치는 지역에서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 반려견들이 많이 있다.
이유야 어쨌건 간에, 사람보다 청각이 뛰어난 개들에게 소음이 주는 괴로움은 고통을 뛰어넘는 공포의 수준일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은 20 Hz에서 2만 Hz 범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반면, 개는 67 Hz에서 4만 5000 kHz 까지 들을 수 있다고 하니 (참고로 고양이는 55 Hz에서 79 kHz 범위로 개보다 청각 능력이 뛰어나다), 사람에겐 느껴지지 않아도 개, 고양이에게는 무시무시한 고통이 될 수 있다.
서울 도심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사람들의 청각에 이미 익숙해졌기에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긴 하지만, 소음 공해로 인해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겪는 스트레스가 많은데 개는 오죽할까 싶다. 인간 사회에서 이용하고 있는 기구 및 시설 등은 인간의 귀에 익숙하게끔 세팅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소리가 시끄러워도 허용할 만큼 사람의 다른 욕구나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콘서트장의 시끄러운 소음은 음악이란 아름다운 선율로 변화하고, 불꽃놀이의 소음은 시각을 만족시키는 엔터테인먼트로 간주된다. 버스와 지하철의 소음도 괴롭긴 하지만, 우리가 이용해할 편의 시설이기에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응하여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이루어 놓은 현대사회에 들어와서 함께 사는 개들에게 이러한 소음은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 범위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개가 처음 가축화되어 인간 사회로 들어왔을 때는 분명 이런 현상을 예견하지 못했으리라. 반려견에게 나타나는 다른 많은 질병도 마찬가지지만, 동물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인간의 목적에 따라 품종을 조정하고 인간 사회에 들여놓았기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본성적으로 소리에 민감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병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은 질병으로 분류해 버리고 고맙게도 치료약도 만들어 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은 이런 때 정말 적합하다. 많은 노력을 쏟아 소음 공포증을 완화하는 약물을 투여하는 치료법을 선보인다.
당신이 시끄러운 소리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자. 친구나 가족의 간곡한 요청 또는 거부할 수 없는 직장 상사의 명령에 따라 락 콘서트장에 억지로 끌려갔다. 락 음악의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괴로워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는 당신에게, 콘서트장에 응급상황을 대비해 상주하는 의사가 '소음 완화 약물'을 투여해 준다. 노르에피네프린 (norepinephrine)이라는 신경물질의 분비가 억제되어 공포와 불안이 줄어든 당신은 약간의 메스꺼움을 간직한 채 멍하니 콘서트를 관람하고 나온다.
극단적이고 과장된 예시이지만, 개의 소음 공포증과 그 치료약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런 씁쓸함이 든다. 물론 미국의 수의사와 보호자들이 소음 공포증에 대하는 자세는 무분별한 약물 투여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추며 신중한 접근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기준에 따라 개의 본성적 능력이 학대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물론 이것을 확대 적용하면 '도시에서 인간이 개를 키우는 것 자체'가 동물 복지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이미 이루어진 일을 돌이킬 수 없다면, 개를 키우면서 고려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아진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인간 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되기 이전에는 인간과 개 사이의 모습이 지금과 사뭇 달랐겠지만, 변화되는 생활환경에 따라 그 관계를 올바로 가져가려는 노력 또한 인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