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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08. 2018

끼리끼리 잘 논다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릴 수밖에 없다

'끼리끼리 자알 논다'라는 표현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깔려 있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끼리만 논다는 것을 비꼬는 표현이다. 머리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사실 우리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개인의 의지에 상관없이 고등학교 학창 시절까지는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같은 학교, 나이, 학년, 수업, 스케줄, 선생님 등 동질성이 다양성보다 더 크게 부여된다. 다양성은 열성 형질이 되어 표현형으로 발현하지 못한다. 그렇게 감추어진 개인의 내재된 다양성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더 크게 부각된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어 통일성을 발견하고 유사한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데에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가 강화된다.


다양성을 이성적으로는 인정하더라도 감정적으로는 거부하게 되며, 실제 삶에서는 필연적으로 유사한 가치관을 가지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게 된다. 그러한 유사함과 동질성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기호나 사회적 성공을 위한 전략에 따라 주관적으로 결정된다. 단적으로, 학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학연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차이는 덮어둘 수 있다. 전략적 선택이 아니더라도 단순히 심리적 안정감 차원에서 유사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딱히 할 말이 없을 때에,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색함을 쉽게 치워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슷한 직업, 비슷한 나이, 경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특정 무리가 공유하는 부분을 갖지 않은 사람이 그 집단에 들어가게 될 때, 아무리 기존의 구성원들이 새로운 사람을 환영하고 맞아준다 하더라도, 공유점을 발견하지 못한 소수의 사람은 결국 적응에 실패하고 그 모임에 동화되지 못한다. 사회에 다양성이 적을 때, 소외되는 개인은 고립을 막기 위해 다수가 공유하는 가치관과 문화를 따라가기 위해 애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이것은 곧 삶의 질 저하를 야기한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어야 하는 불편함, 때로는 괴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남녀를 불문하고 서른 살이 넘어도 결혼을 안 했으면 노총각, 노처녀 딱지가 붙었다. 그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30살 전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결혼을 안 한 사람은 결혼을 '못한' 사람으로 치부되어 인생의 낙오자, 뒤처지는 자로 낙인 되기 일쑤였다. 결혼을 했는데도 아기가 없는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다수의 문화에 소수는 죄인이 되어 잠식되는 사회였다.


지금은 결혼을 안 하고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노총각, 노처녀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을 안 했다고 삶의 질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인생의 정답지가 객관식이었고 정답은 하나였기에, 그 외의 경우는 오답으로 처리되었다. 이제는 정답지가 주관식으로 바뀌고 있으며, 채점하는 사람은 본인이 되어 마음껏 답을 쓰고 스스로의 삶에 점수를 매기면 된다. 다양성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러한 현상의 가속화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된다.     


인간의 삶에서 다양성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고민거리이다. 절대로 지키고 넘어야 할 선이 있는 것인지, 개개인의 다양한 선택들이 모여서 설정되는 범위가 무한히 넓혀지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다양성에 대한 미래의 모습은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결국 끼리끼리 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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