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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28. 2018

싸고 빠르고 질 좋은 대한민국

이것들이 살기 좋은 충분조건은 아니다

미국에 몇 년 거주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점 중에 하나는, 한국에서의 싸고, 빠르고 질 좋은 서비스와 제품, 그리고 행정적인 일처리에 대한 일종의 그리움 및 경외감이다. 처음에는 미국에서의 이 느림에 대해 여유로움은커녕, 답답하기 그지없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식 절차를 거쳐 사회보장 번호 (SSN; Social Security Number)를 신청하고 발급받는데 한 달이나 걸려 우편으로 배송을 받아야 하고, 운전면허증 하나 받는데도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마저도 제대로 오면 다행이다. 서울보다 인구수도 훨씬 적은데 뭐 그리 어렵고 업무량이 많다고 그렇게 오래 걸릴까. 미국 사람들은 멍청하고 게으르니깐 그럴까. 왜 단순한 업무 하나를 빠릿빠릿하게 하지 못할까. 몇 개월에서 1년씩이나 걸리는 행정처리도 추가 비용을 내면 15일 내에 해준다는 것은, '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다'는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 거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 크게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 없는 게 없어서 예전처럼 '미제'라고 좋아하며 미국 여행을 하고 선물을 사 갈만한 희귀 아이템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미국 제품이 엄청 싸고 질 좋은 것도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들어 온 제품이다. 한국도 요즘은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서 오는데도 제품의 질이 다른 것은, 분명 품질 관리 책임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리라. 불과 20년 전에만 해도 '미제'라면 좋아할 것들이 꽤나 있었지만, 지금은 유학생들을 포함해 많은 미국 거주자들은 누군가 한국 방문 후 한국 제품을 가지고 오면 신문물을 접한 듯이 감탄을 한다. 이제는 '한국 제품'이 단연 최고다. 

미국 마트 타겟 (Target)에 진열되어 있는 Made in Korea 마스크 팩 

실생활에서의 예를 들면, 마트에 갔을 때, 계산대 직원들의 상품 바코드를 찍고 계산하는 속도는 한국 마트 직원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 한국은 줄이 아무리 길어도 순식간에 처리가 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팀이 알아서 나서서 도와준다. 요즘은 계산 시스템이 전부 전산상으로 되어 있어서, 바코드 찍고 물건 담고 계산을 하는 비교적 간단한 프로세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직원은 확실히 느리다. 간혹 빠릿빠릿한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마트의 직원 분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당연히 한국 직원의 손이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바코드 하나를 찍고 계산하고 물건을 정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계산대 직원 담당에는 주로 아주머니들이 많은데, 동양인 중년 여성의 근육 활동량과 순발력, 민첩성, 체력이 미국인들보다 선천적으로 훨씬 뛰어나서 그럴까? 절대 아닐 것이다. 필요에 의해 그렇게 훈련되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설치 및 전자제품 A/S

한국에 있을 때 생각해 보면, 인터넷 설치를 하거나 TV 등이 고장 났을 때 A/S를 신청하거나 하면, 기사 분께서 거의 전화한 당일이나 아무리 늦어도 다음날에 오시곤 하셨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나름 발달된 도시인데도 기사를 예약하고 방문하는데 최소 일주일은 걸린다. 프랑스 같은 유럽에서는 인터넷 한번 설치하는데 한 달은 족히 걸린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전자제품이 고장 나는 일에 대해선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품질보증 (워런티) 기간이 끝나면 따로 워런티를 구입하지 않는 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지인들은 유튜브를 보고 직접 고치던가, 안 고친 채로 살던가, 아예 새로 사던가 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엘지, 삼성과 같은 유명 전자제품 브랜드가 한국 것이기에 빠르고 편리한 A/S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대한민국이다.  


택배 및 배달 서비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집 문만 나가도 모든 것이 다 있는 한국에서 택배 시스템이 어떻게 그렇게 발전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일 정도로 택배 서비스는 놀랍다. 당일 배송은 물론이고, 택배로 못 시키는 것이 없다. 미국도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이용하면 2일 내에 배송이 되는 물건이 많이 있지만, 총알 배송은 한국이 시초일 것이다. 앱을 이용한 배달 서비스는 안타깝게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말로만 들어도 놀라움이 예상된다.  

 

의료 서비스 

한국의 많은 학문 분야에서 여전히 선진학문에 뒤쳐진 경우가 많이 있지만, 의학적 측면에서, 비용 대비 의사의 수준, 기술 및 서비스는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된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주 (State)에는 세계 최고의 의료 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메이오 클리닉 (Mayo Clinic)이라는 대형 병원이 있다. 오일 머니를 들고 먼 중동 지역에서도 엄청난 부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진료받으러 오는 곳이다. 한국의 아주 유명한 재벌 회장님도 이곳까지 와서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 같은 서민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우선 의료보험이 해당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되고, 진료를 제때 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같은 주에 있다 해도 거리도 멀다. 세계 최고의 의사가 이 넓은 미국 땅 덩어리 어딘가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병원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이지만, 재벌이나 재벌급의 스포츠 선수들을 대하는 의사가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 서민들이 만나는 평균적인 의사의 수준은 한국 의사가 높으면 높았지 절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한국인들은 웬만하면 미국 병원에서 수술 및 중요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 한국 가서 의료보험 혜택 받으면서 진료받는다고 온라인 상으로 비난을 받을지언정, 한국 비행기표를 끊고 10시간 이상을 날아가서 진료와 수술을 받는 것은, 단지 한국이 고향이고 언어가 잘 통하는 나라여서가 아니다. 훨씬 싸고, '믿을만하기' 때문이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한국의 거의 모든 분야에 '싸고, 빠르고 질 좋고, 편리하다'라는 것은 적용이 된다.  


하지만 그러한 한국의 수준 높은 품질과 서비스를 토대로 한국이 마냥 좋다고 얘기할 수가 없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빠르고 좋고 편리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그만큼 '열심히, 힘들게, 바쁘게, 저임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회에 들어가면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마트에서 내가 1분이라도 빨리 계산하고 나올 수 있는 것은, 마트 직원분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며 빨리빨리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급이 같아도 마트 직원 1명이 계산을 하는 총물건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깨어서 집중하고 빠릿빠릿하게 일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 설치를 내가 일주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인터넷 기사분께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서비스 요청을 커버하고도 시간을 내어 우리 집에 빨리빨리 방문해 준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해진 시간에 기사 분께서 돌아다니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때나 맛있는 음식을 싸고 빠르게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적은 돈을 받고도 쉬지 않고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식당 직원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병원을 가서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의사 1명이 진료하는 환자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평균적인 실력이 뛰어나단 말은, 그만큼 한 의사가 많은 환자를 보고 트레이닝을 받고 경험을 쌓고 열심히 일한다는 말이다. 물론 간호사와 모든 병원 직원들도 포함이다.


언제 어디서나 택배 물건이 빠르게 온다는 것은, 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배달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싸고 편하게 이용하는 만큼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싼 값으로 힘들게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은 '값싸고 뛰어난 노동력'이 있다.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이 곧 우리 부모님, 배우자, 형제, 친척, 친구, 그리고 내가 된다. 내가 금액을 지불하고 당연하듯 누리는 비생물적 요소인 '서비스'가 실상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착취인 것이다. 


사람 자체가 좀 더 존중받고 인간성이 대접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는 건강, 삶의 여가, 가족과의 시간, 목숨을 담보로 한 채 저렴한 임금으로, 좀 더 빠르게, 좀 더 열심히,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좋은 한국 제품과 서비스를 생각하는 것이 그리 기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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