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게는 동생이 있다

by 물소리를 꿈꾸다

떠나는 이는 두 번 세 번 뒷날의 기약을 남기지만,

외려 보내는 사람의 옷깃을 눈물로 얼룩지게 하네.

조각배는 이제 떠나면 언제 돌아오려나,

보내는 이는 하릴없이 강둑을 뒤로하고 돌아서네.


-이승수 편역, <옥같은 너를 어이 묻으랴>



내게는 동생이 한 명 있다.


23개월 가까이 차이 나서 양력으로는 두 살 차이지만, 음력으로는 내가 정월이고 동생은 섣달이라 한 살 차이가 되는 남동생. 그런 동생이 작년 가을에 연락을 해왔다.


“누나 나 계약했어.”


결혼해서 군산에서 5년 살다가, 고향 논산에서 2년 살다가, 다시 군산으로 간 지 1년 반이 되었는데, 지금 사는 집에서 좀 더 평수가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아무래도 큰 아이 입학 문제도 있어서 집을 알아봐야 한다더니 결정을 내렸나 보다.


“학교는?”

“집에서 4백 미터 밖에 안 떨어졌어.”

“돈은 어떻게, 돼?”

“내일부터 대출 알아봐야지. 6천만 원 정도.”

“내가 도와주지도 못하고...”

“아, 누나 그런 말 하지 마!”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을까? 그때 동생에게 지나가듯 한 말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빚 갚느라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결혼만큼은 우리 힘으로 하자고. 그리고 6년 후, 동생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다. 물론 집 사는데 그동안 자신이 번 돈을 흔쾌히 내놓은 올케의 도움도 있었지만.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24평 아파트를 샀다는 말을 듣고 무척 기뻤다. 비록 나는 작은 원룸에 살고 있지만, 내 동생이 한 가정을 이루고, 거기에 본인의 이름을 된 집까지 샀다는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몇 년 전, 사촌언니가 사는 40평대 아파트에 갔을 땐 시기 질투 뭐 이런 마음이 가득했는데, 내 동생이 집을 샀다는 말을 들으니까, 사촌언니에게 향했던 부러웠던 마음이 싹 날아가 버렸다. 그랬던 동생이 이번엔 32평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 여전히 나는 그때 원룸에서 살고 있지만,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마음이 붕붕 떠다녀서, 로드뷰로 동생이 이사한다는 동네를 여러 번 찾아봤다.


내게 동생은 늘 눈물 짓게 만드는 존재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을 앞두고,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하셨다. 그 후 엄마는 서울 큰이모 집으로 갔고, 그곳 방화동 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시작하셨다. 여름 방학 때는 동생과 내가 서울로, 추석과 11월에 있던 작은 아빠 결혼식, 할머니 제사와 설날에는 엄마가 내려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3월 말. 나는 엄마가 사는 서울로 올라가게 됐다. 그리고 아빠를 따라 책가방을 메고 동네를 벗어나던 길에 동생을 만났다. 그때 동생이 누나 어디가? 하고 물었던가? 그 부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신 동생이 달려와 내게 손바닥을 내밀던 건 기억난다.


“누나, 나 백 원만.”


그땐 동생도 나도 몰랐다. 이 순간이 헤어짐이 되리라는 걸. 그래서 오백 원짜리 동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백 원을 주려는 내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주희야, 그냥 오백 원 줘.”


돈을 주기 싫었던 나는 아빠를 올려다봤다. 아빠의 턱짓에 할 수 없이 오백 원을 건넸고, 볼이 발개진 동생은 히히- 웃으며 또래 친구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연무대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리고 몇 주 후, 동생이 엄마 아빠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서울에 왔다. 시제 지내러 논산에 내려갔던 큰 당숙이 동생을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동생은 또다시 논산으로 내려갔고, 5월에 있던 봄 운동회까지 마치고 나서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와 함께 손잡고 춤을 춰야 하는 율동에 임신 8개월인 작은 엄마가 함께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린 시절 한없이 밝았던 동생의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몇 년 전, 동생이 무심히 한 말에 울고 말았다.


“누나가 없어서 소 막에서 강아지 안고 놀았어.”


태어나서 지금껏 함께했던 누나가 없어졌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도 누나가 오지 않았다.

소를 판 뒤로 비어있던 외양간에서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

그곳에 누워서 강아지를 배에 올려놓고 놀았다.

강아지를 배에 올려놓으니 따뜻했다.


그 말을 하는 중간에 동생은 웃음을 보였지만, 듣는 나는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문장으로 쓰고 보니 이 행간엔 너무도 많은 아픔이, 먹먹함이, 슬픔이 담겨 있다.

그때 여섯 살 동생의 마음은 얼마나 컴컴하고 아득했을까!


몇 달 전, 논산 집에 와서 자던 동생이 아침에 일어나 말했다.


“꿈에서 누나 잃어버려서 한참을 찾아다녔어.”


이제는 두 딸의 아빠가 된 동생인데, 자신이 먼저 결혼했다며 누나보다 어른이라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동생인데, 아직도 그때 꿈을 꾸고 있다니.


그래서 난 동생만 생각하면 목에 돌멩이가 걸린 듯, 눈물부터 난다.

작가의 이전글엄마 생각